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 세력인 강성 친문(親文) 지지층이 4·7 보궐선거, 내년 대선을 앞둔 민주당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민주당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 승리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보궐선거는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고, 내년 대선은 ‘정권 심판론’이 우세한 분위기 속에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으로선 중도층 포섭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소신 발언을 하는 당내 인사를 무차별 공격하면서 정국 핵심 현안을 좌지우지하는 강성 친문 지지층이 오히려 외연 확장에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중진 의원도 이들 눈치를 보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최근 “강성 지지자들이 당을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강성 친문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막으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면이 있다”고 했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새해 첫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한 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연일 집단 공격하고 있다. 이 대표는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면’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회의가 생중계된 유튜브 실시간 대화창엔 “이낙연은 당대표를 사퇴하고 정계 은퇴하라” “국민의힘으로 가라” 등 강성 당원과 극렬 지지자들의 공격성 댓글이 쏟아졌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이날 민주당사로 진입해 이 대표 면담을 요구하는 등 외부 단체도 가세했다.

文대통령, 친환경 고속열차 ‘KTX 이음’ 시승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강원도 원주역사에서 열린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 이음’ 개통식에 참석한 뒤 시승을 위해 열차에 탑승했다. 문 대통령 왼쪽은 강원지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 /연합뉴스

친여 성향 커뮤니티에선 이 대표를 윤리 규범 위반으로 당에 신고했다는 글도 이어졌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몰려가 ‘사면 반대’ 청원을 올렸다. 동의 인원이 청원 공개 첫날 7만명을 넘어섰고, ‘이낙연 대표 사퇴 촉구’ 청원까지 올라왔다.

강성 친문의 반발에도 이 대표는 4일 언론에 “질책도 달게 받겠다. 그럼에도 절박한 심정에서 (사면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국민 통합 차원이란 것이다. 이어 “언제 한다는 것이 아니고 적절한 시기가 오면 (대통령에게) 건의 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본 입장엔 변함 없다는 취지였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작년 8월 당대표 취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강성 친문과는 다른 ‘자기 목소리’를 낸 만큼 ‘사면 건의’ 카드를 쉽게 주워 담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일부 여권 인사는 최근 이 대표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이라며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다만 이 대표는 “저항이 예상보다 강해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다”는 취지의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한 토론회에선 강성 친문 지지자들에 대해 “상식적인 분들” “당의 에너지원(源)”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데 열성 지지층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숙제가 됐다”고 했다.

강성 친문 지지층은 그간 총선 공천,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정국 주요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여당 의원부터 학자, 판사까지 공격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장관을 향해 쓴소리를 했던 민주당 이상민·정성호·조응천·박용진 의원에겐 문자 폭탄을 보내며 ‘윤석열 탄핵’을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비판했던 금태섭 전 의원,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등도 타깃이 됐다.

일부 강성 친문 지지층이 당 전체 의사 결정을 제약하는 현상은 민주당이 자초한 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강성 친문을 중심으로 내부 여론을 결집해 ‘전 당원 투표’를 거쳐 작년 3월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고, 11월 당헌·당규를 바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도 내기로 했다. 적폐 청산도 이들의 지지를 동력으로 삼았다. 강성 친문의 영향력을 활용하면서도 무차별 인신공격 등 지나친 행보를 묵인하면서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