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3일 “언론 개혁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며 “언론 개혁 입법 등 이번 (2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처리할 것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이른바 민주당판 ‘검찰 개혁’에 이어 이번엔 민주당판 ‘언론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나온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는 사회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反)사회적 범죄”라며 “민주당 미디어 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가 마련한 언론 개혁 법안을 차질 없이 처리해달라”고 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가짜 뉴스 등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언론사가 정정 보도 때 최초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수석전문위원은 작년 9월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 “민법상 손해배상, 형법상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돼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검토 보고서에서 밝혔다. 정정보도 관련 개정안에 대해서도 작년 11월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국회 소위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이의 제기를 감안해 현행을 유지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황성기 한양대 교수는 “정부·여당에 불리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해 언론에 재갈을 물릴 위험도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면 정권 비판 보도 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 전문위원 “헌법상 과잉금지 위반”, 문체부 “언론사 부담 과도”
더불어민주당이 3일 언론 관련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자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등 검찰 때리기에 이어 판사 탄핵으로 법원 길들이기에 나서더니, 이젠 ‘언론 손보기’ 작업에 들어간 것이냐”는 말이 나왔다. 여권이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비판 세력을 옥죄려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날 “악의적 보도와 가짜 뉴스는 반(反)사회적 범죄”라며 최소한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 관련 법안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도 이미 언론의 오보와 명예훼손에 대해선 정정 보도와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21대 국회 들어 발의한 이른바 ‘언론 개혁’ 관련 법안의 명분은 ‘가짜 뉴스’다. 가짜 뉴스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게 하고, 정정 보도를 할 경우 처음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하도록 규제하는 내용 등이다. 민주당은 20대 국회 때부터 관련 법안을 제출하며 “가짜 뉴스를 통제해야 한다”고 해왔다. 하지만 당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입법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그런데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174석을 확보한 만큼 법 개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과잉 입법’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명시한 민주당 윤영찬 의원안(案)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민법상 손해배상 제도나 형법상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되어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또 언론 보도에 대한 명예훼손죄 처벌 수준이 “이미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비해 가중된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은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경우에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정정 보도의 시간·분량·크기를 원래 보도와 동일하게 하도록 한 민주당 김영호 의원안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이견을 나타냈다. 오영우 문체부 1차관은 작년 11월 국회 문체위 소위(小委) 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대해 “언론사에 과도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에서 정정 보도 크기를 원래 보도의 2분의 1로 하는 안도 논의 중이지만, 이 역시 정정 보도를 법으로 통제하는 내용이다. 정정 보도를 무조건 신문 1면 또는 방송 첫 시작 시점에 하도록 강제한 민주당 박광온 의원안에 대해서는 국회 문체위가 검토 보고서를 통해 “언론 자유와 편집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가짜 뉴스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선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했다. 민주당 법안이 입법화하면 언론이 ‘가짜 뉴스’ 틀에 갇혀 정당한 의혹을 제기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CNN 뉴스를 가짜 뉴스로 몰아간 사태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원래 미국에서 가짜 뉴스는 뉴스 형식을 위조한 거짓 정보를 가리키는 말인데, 언론사 보도를 가짜 뉴스 범주에 엮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황성기 한양대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명백한 증거 없이 보도를 자제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자유롭고 신속한 의혹 제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민주당의 언론 법안 추진을 ‘비판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내건 언론 개혁은 자기들 유리한 뉴스만 옳다고 치켜세우고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은 코로나 백신 수급 논란 때도 ‘가짜 뉴스가 문제’라고 했다”며 “정부·여당 말에 토를 달지 말라는 법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