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9일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에서 정권의 조직적인 낙하산 인사를 가리켜 “타파되어야 할 관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내정한 인사들을 산하 공공기관에 앉히기 위해서 현직 임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고, 내정자들을 위법하게 임명한 점을 유죄로 판단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행처럼 되풀이된 낙하산 인사의 위법성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공공기관에 포진한 ‘친문(親文) 낙하산’ 채용 과정 전반이 임기 말 문재인 정권의 폭탄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날 1심 판결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청와대가 찍은 ‘내정자’가 임명되도록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은 기존 자리에 앉은 인사들에겐 일괄적인 사표 징수에 나섰고, 거부할 경우엔 표적 감사도 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 과정에서 김 전 장관은 “이전 정부에도 이 같은 관행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렇더라도 이는 타파돼야 할 불법 관행이지,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할 수 없다”고 했다. 낙하산 인사는 사라져야 할 ‘범죄’라는 취지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이루어진 대규모 ‘캠코더(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향후 정권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공공 기관·정부 산하 기관 임원 2727명을 전수(全數) 조사한 결과 캠코더 인사로 의심되는 사례가 17.1%(466명)로 나타났다. 코드 인사 의심 사례 466명 가운데 기관장은 108명에 달했다. 공공 기관 4곳 가운데 1곳은 친문 코드 인사가 기관장으로 포진한 셈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 기관 임원 10명 가운데 7명이 캠코더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환경부 산하 공공 기관 임원 44명 중 32명(73%)이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시민단체·민주당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날 재판부가 낙하산 인사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 환경부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공공 기관 임원으로 채용된 다른 친(親)정권 인사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분석에 따르면 교육부 산하 기관 25곳 중 절반이 넘는 13개(52%) 기관이 코드 인사로 집계됐다. 또 국토교통위 소관 25개 공공 기관 234명 중 78명(33.3%), 정무위 소관 40개 공공 기관 220명 중 57명(25.9%), 기재위 소관 4개 공공 기관 32명 중 7명(21.8%), 산자위 소관 55개 공공 기관 557명 중 115명(20.6%)이 낙하산 인사로 채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공공 기관 곳곳에 씨앗처럼 뿌려진 친문 낙하산들이 이제부터는 정권의 발목을 잡는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