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급 주택 15채를 수의 계약 등의 방식으로 사들여 징계 받았던 전직 LH 직원 A씨가 국토교통부 산하 다른 공기업(공사)에 재취업해 감사 책임자로 근무 중인 것으로 19일 나타났다.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 LH에서 징계받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공사 측은 전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촉발된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본부장을 맡은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오른쪽)이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청사를 나서고 있다.2021.3.19/연합뉴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에 따르면 A씨는 LH에 근무하던 2012~2017년 본인과 가족 명의로 수원, 동탄, 목포, 대전, 논산, 포항, 창원, 진주 등지에서 LH 공급 주택을 무더기로 사들였다. LH 공급 주택 취지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기여’다. 그런데 LH 직원인 A씨가 가족 명의까지 동원해서 순번 추첨 수의계약, 추첨제 분양으로 15채나 ‘쇼핑’하듯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후 A씨는 LH 내부 감사에서 의무 사항인 분양 내역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돼 징계에 부쳐졌다. 그는 “모친의 안정적인 생활비 마련을 위한 월세 수입 목적으로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다수 취득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결국 견책 징계가 내려지자 2018년 LH를 퇴사했다.

A씨는 이듬해인 2019년 국토교통부 산하 또 다른 공기업에 재취업했다. 당시 채용 공고에 따르면, 경력 증명서에 전(前) 직장 등에서의 상벌 내용, 퇴직 사유를 필수적으로 기재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A씨는 경력 증명서에 상벌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고, 재취업에 성공해 입사 1년 만에 감사를 총괄하는 책임자급(2급)으로 승진했다. 이 공기업은 최근까지도 A씨의 LH 공급 주택 대거 매입, 징계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재취업 과정에서 LH 징계 사실 등을 밝히지 않은 것과 관련해 “입사에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그랬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지난 10일 저녁 7시,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LH 본사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A씨의 ‘LH 공급주택 15채 취득’ 사례는 A씨가 재취업에 성공한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거론된 적이 있다. 당시엔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지는 못했는데, 최근 LH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그런 A씨가 징계를 받고 LH에서 퇴사한 후 또 다른 공기업에 재취업했고 지금은 감사 책임자로 근무하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해당 공기업 측은 A씨가 재취업 과정에서 LH 시절 징계 이력을 밝히지 않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야당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짙은 사람이 다른 직원들의 비위를 적발하는 감사 책임자로 근무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A씨가 징계내용을 감춘 것은 불합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취업 당시 채용 공고에는 ‘응시원서 허위 기재, 허위 증빙 자료 제출 시 불합격 처리한다’고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

공사 측은 “A씨 사례가 채용 취소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위해 법적 자문을 의뢰한 상태”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황보승희 의원은 “A씨 경우는 문재인 정권의 공직 기강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라며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가 공직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