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사의를 밝히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숙고할 것”이라고 해 그의 대선 도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 원장은 현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감사해 현 정권 핵심부와 대립했다. 그런 그가 이날 ‘역할론’을 거론하자 야권(野圈)에선 “최 원장이 7월 중순쯤 대선 도전을 결단하고 8월 초쯤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날 최 원장에 대해 “항상 좋은 평가를 하고 있고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분”이라고 했다.
최 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했다. ‘언제 정치에 입문하느냐’는 물음에는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인가’란 물음엔 “차차 말씀드리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최 원장 지인들은 그가 당분간은 정치 참여나 대선 도전을 공식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 원장을 ‘대안 후보’로 거론해온 야권 인사들은 “최 원장의 숙고가 아주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 참여 선언 하루 전에 최 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정치 스케줄에 따른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최 원장은 최근 과거 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를 만나 정치 참여 문제를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최 원장을 지지하는 한 그룹이 다음 달 5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그의 대선 출마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최 원장 측과 소통하는 한 인사는 “정치 참여를 선언한다면 다음 달 5일 이후가 되지 않겠느냐”며 “그렇다고 바로 국민의힘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바깥에서 사람도 만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법관으로 재직하다 현 정부 출범 후 감사원장에 발탁된 최 원장은 정치권에 이렇다 할 세력 기반이 없다. 이 때문에 그가 7월 중순쯤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고 8월 초쯤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준석 대표가 ‘8월 말 경선 돌입’을 공언한 상황이라 최 원장이 늦지 않은 시기에 입당을 포함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영남권 의원들이나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 원로 그룹이 최 원장의 잠재적 우군(友軍)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 원장은 경남 진해 출신이다. 실제로 영남권의 한 단체는 최근 최 원장 정치 참여에 대비한 준비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태극기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국민의힘 상징색인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맸다. 국민의힘의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주도한 전(前) 정권 수사에 여전히 반감을 가진 일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최 원장을 대안 후보로 주목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최 원장의 대선 도전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내온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날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공화국으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최 원장”이라고 했다. 정 전 의장은 최 원장이 정치 참여를 선언하면 지원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장의 한 측근은 “최 원장이 요청할 경우 정무·공보 분야에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정 전 의장은 다만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최 원장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고 나면 그런 것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정도로 봐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