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일부 지도부가 28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질된 청와대 김기표 전 반부패 비서관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비판하며 김외숙 인사수석 경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전 비서관 논란 나흘째인 이날도 이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청와대 비공개 회의에선 “인사수석 책임이 아니다”라며 여당 요구가 과하다는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수석 거취 문제가 당청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김 전 비서관 경질에 “만시지탄이지만 신속하게 처리했다”면서도 “왜 이런 사안이 잘 검증되지 않고 임명됐는지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했다. 백혜련 민주당 최고위원도 라디오에 나와 “인사수석이 검증 문제에 대한 총책임을 질 필요는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 인사가 공개적으로 김 수석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수석이 대통령이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 거취 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결함을 이미 드러냈다”고 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 역시 “인사수석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했다.
송 대표는 휴일이었던 지난 26일 직접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 전 비서관에 대한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고, 여당 일부에선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송 대표가 경질하라는 의사를 전달할 때만 해도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송 대표가 부동산 때문에 이탈한 민심을 되돌리고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발(發) 논란이 여권 전체를 다시 ‘부동산 내로남불’ 수렁에 빠뜨렸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친문(親文) 진영 측은 김 수석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등 대선 주자들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 친문 의원은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인데 청와대를 공격해 문재인 정부 실정을 부각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민주당의 인사수석 경질 요구에 대해선 답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지만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김 수석은 이 문제 이전부터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바 있어서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잇달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실패에도 김 수석에 대한 신뢰를 보여왔다. 김 수석은 작년 8월 ‘청와대 참모 다주택’ 논란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 등 고위 참모 5명과 함께 사의를 표했지만, 문 대통령은 반려했다. 실제 청와대는 김 전 비서관 재산이 공개된 25일에도 “별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65억원대 서울 마곡동 상가를 사면서 은행 빚 약 54억원을 대출받는 등 이른바, 문재인 정권이 적폐로 여기는 ‘빚투(대출을 받아 투자)’를 했는데도 “민간인이던 변호사 시절에 했던 투자”라고 감쌌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부동산 내로남불과 인사 검증 실패를 문제 삼자 27일에야 김 비서관을 경질했다.
오히려 청와대 내부에선 “집권 여당이 나서서 청와대 인사수석 책임론을 따질 문제냐” “청와대 인사 시스템도 잘 모르면서 왜 공개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제만 생기면 자르라고 하는데,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라며 “특히 김 전 비서관 인사 검증과 관련된 건 엄밀히 말해 김외숙 수석 책임도 아니다”라고 했다. 통상 인사수석실이 복수의 인사를 추천하면, 민정수석실과 총무비서관, 인사추천위원회 등에서 검증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른 인사도 “이미 김 전 비서관이 사표를 냈으니 마무리된 문제”라고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부동산 문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반면, 청와대는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임기 말 30%대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전셋값 꼼수 인상’ 논란이 불거진 김상조 전 정책실장을 경질할 때도 그의 사의는 즉각 수용하면서도,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박준영 해양수산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부실 검증 논란이 불거져, 민주당이 “3명 중 1명이라도 낙마시켜 달라”고 요구했을 때에도 임명을 밀어붙이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