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 개발’ 의혹이 제기된 여성가족부 김경선 차관과 과장급 직원 등 2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선관위가 내년 대선과 관련해 선거 관여 혐의로 공무원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처음이다. 선관위는 “공무원의 선거 관여는 선거 질서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라며 “향후 유사 사례 적발 시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선관위가 고발한 여가부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지난 7월 민주당 정책연구위원으로부터 대선 공약에 활용할 자료를 요구받고 여가부 각 실·국에 정책 공약 초안 작성을 요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A씨는 회의를 거쳐 이를 정리해 민주당 정책연구위원에게 전달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관은 취합한 정책 공약과 관련해 회의를 주재하는 등 해당 업무를 총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선거 관여 책임자로 지목하고 지난 8일 대검에 고발한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이번 선관위 고발 대상에서 빠졌다. 선관위 관계자는 “조사를 통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2명을 고발했다”고 했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혹은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고 지위를 이용해 선거 운동 기획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선거법상 부정선거운동죄에 해당돼 각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28일 여가부의 내부 이메일을 공개하면서 “여가부 차관이 과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민주당 대선 공약 개발을 지시한 의혹을 확인했다”고 폭로했다. 하 의원은 “여가부가 지난 7월 말쯤 과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차관 주재 정책 공약 회의를 열었고, 과장급 직원들에게 ‘회의를 바탕으로 자료를 만들어 8월 3일까지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국민을 섬겨야 할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선거에 개입한 것 자체가 무거운 죄이기에 선관위의 고발 조치는 당연하다”며 “단순한 일탈을 넘어 조직적인 관권 선거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가부는 “문제가 된 회의는 중장기 정책 과제 개발 회의로 선거법 위반 사실이 없었음을 선관위 조사에서 충실히 소명했다”며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앞서 중앙선관위는 지난 2일 대선 공약 발굴을 지시해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 질책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박 차관 사건은 대전지검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박 차관은 지난 8월 산업부 내부 회의에서 ‘대선 캠프가 완성된 후 우리 의견을 내면 늦는다. 공약으로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어젠다를 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