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1년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일 처음 만난 미 상원의원 앞에서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가쓰라·태프트 협약’으로 미국이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 측과의 공식 외교 석상에서 한일 강제 병합의 미국 책임론을 거론한 것이다. ‘해방 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점령군’ 발언에 이어 다시 ‘외세와 자주’ 구도로 각을 세우며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한일 관계 개선을 약속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과거를 묻지 말라는 일본이 웃고 있다”고도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역사 인식 자체가 80년대 해방전후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연방 상원의원(민주·조지아주)을 만나 “한국은 미국의 지원과 협력 때문에 전쟁에서 이겨서 체제를 유지했고 경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얻었다”면서도 “거대한 성과의 이면에 작은 그늘들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며 “결국 마지막 분단도 일본이 아니라 전쟁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할되면서 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협약)’은 1905년 미·일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으로, 일본이 한반도 식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밀약만으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는 인식은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 경쟁, 조선의 근대화 실패 등 복합적 시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예방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이 이 후보의 발언을 듣고있다. /뉴시스

오소프 의원은 그러자 “어제 전쟁기념관에 가서 한국군과 함께 싸운 유엔군뿐만 아니라 미군 참전 용사를 기리고자 헌화했고, 양국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답했다. 오소프 의원 측은 언론에 “오소프 의원은 그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 한국 전쟁 기간 동맹들과 미 장병들에 의해 이뤄진 희생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가 일본 식민 지배가 미국 탓이란 취지의 발언을 하자, 오소프 의원이 6·25의 미군 희생을 거론하며 반박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처음 만나는 혈맹국 의원에게조차 ‘네 탓’을 시전할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다”며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한미 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은 한미 동맹을 흔드는 이간질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매타버스' 타고 민심 대장정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출발 국민보고회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인사하고 있다. 이 후보 측은“8주 동안 전국 8개 권역을 다니며 민심을 듣겠다”고 했다. 오른쪽부터 이 후보, 강훈식 의원, 송영길 대표. /연합뉴스

이 후보는 또 이날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향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읽어 봤느냐”고 했다. 전날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시작하겠다”고 쓴 데 대한 반론이었다. 이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를 똑바로 인식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때’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며 “지금 일본은 오부치 선언이 나올 때보다 한참 우경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죽하면 일본 언론이 윤석열 후보를 두고 ‘이웃으로 인정했다’고 반기겠느냐”고 했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에 대해 “지위에 걸맞게 경거망동 말고 태산같이 신중하게 고민하고 말씀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러캐머라 사령관이 최근 전작권 전환에 대해 “대부분 계획이 처음 그대로 가진 않는다. 수립된 계획을 조정하며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한 데 대해 기 의원은 “전작권 환수 논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건 미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건 미국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