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야당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무더기 통신 자료 조회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민의힘은 “무소불위 권력의 불법 사찰 민낯이 드러났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3일 기준 의원 14명 등 국민의힘 정치인 15명이 공수처의 통신 자료 조회 대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되자 국민의힘은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처장은 “(공수처가 수사하는) 피의자와 통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통신사에 조회한 것”이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공수처를 항의 방문했다. 김진욱 처장은 처음엔 “이비인후과 치료 후 몸이 좋지 않아 정형외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의 면담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다 김 처장이 야당 의원들 항의 방문 3시간 후쯤 공수처 청사에 나타나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김 처장과 30분간 면담하고서 “김 처장은 피의자와 통화한 상대방을 알아보기 위한 조회였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해명 자료를 내라고 요구했고 김 처장은 ‘고민하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장 의원은 “공수처가 무능해서 그런 것인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김 처장은 ‘정치적 중립성 부분을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김 처장은 야당 의원들에게 “공수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니, 인력을 충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장 의원은 “법안 통과보다 국민적 신뢰가 먼저”라고 했다고 한다. 공수처 수사관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수처법 개정안 등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해놓았다.
국민의힘은 이날 공수처의 무차별적 통신 자료 조회를 두고 “언론 사찰 의혹을 넘어 야당 정치인을 상대로 광범위한 자료 조회를 벌인 사실이 드러난 만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논평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공포감을 느낀다’는 표현이 공수처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라며 “공수처는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 사찰 역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은 이날 선대위 회의에서 “공수처가 마치 공포처처럼 변질되고 있다”며 “무차별적으로 시행하는 통신 조회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전 공수처 통신 자료 조회의 불법성을 따지겠다면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민주당에선 “야당의 일방적 회의 소집에 응할 수 없다”면서 법사위원장인 박광온 의원과 법사위 민주당 간사 박주민 의원만 참석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윤한홍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때 ‘독재정권의 게슈타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며 “단순 통신 사찰이 아니다. 대선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문재인 정권에는 사찰 DNA(유전자)가 없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나온 것만 봐도 사찰공화국”이라며 “민주주의를 짓밟는 아주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찰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판단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수사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박광온 의원도 수사기관의 통신 자료 요청과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을 언급하며 “영장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없다”며 “이 법조문만 놓고 보면 (공수처의 조회를) 사찰, 위법 행위로 단정해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가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