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수감 생활에서 벗어났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2017년 3월 31일 구속된 지 4년 9개월 만이다. 수감 중 건강 악화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오는 31일 사면·복권된다. 하지만 신경계 치료 등을 위해 오는 2월 초까지 입원 생활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선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얘기도 거론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당분간 정치인들은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사면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아울러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주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도 심심한 사의(謝意)를 표한다”며 “신병 치료에 전념해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병실에서 이같이 말했으며, 유 변호사가 이를 받아 적어 기자들에게 전했다. 유 변호사는 “오전 9시에 병실에서 TV로 뉴스를 같이 봤는데, 대통령은 (사면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내년 2월 초까지 계속 입원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유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의료진에게 내년 2월 2일까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당장은 치료가 최우선”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5년 가까이 복역하면서 어깨 질환과 허리디스크 등 지병 외에도 최근 치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치아가 약해져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해 주로 미숫가루나 죽으로 식사를 한다고 한다. 정서적으로도 다소 불안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오늘 사면 소식을 접하자 ‘고생 많았다’면서 십수년 전 일까지 꺼내놓는 등 2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을 만큼 기억력이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퇴원 후 거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가 유죄판결에 따른 추징금 징수 차원에서 경매에 넘어갔다”면서 “낙찰받아 매입한 측은 저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앞서 한 연예기획사는 지난 9월 16일 법원 경매를 통해 38억6400만원에 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이 업체는 박 전 대통령 측에 임대할 의사를 전했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변호사는 “제3의 거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씨도 서울 인근에 박 전 대통령이 머물 거처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한 지인은 “박씨가 때가 되면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거처 문제를 상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 변호사도 “박 전 대통령이 건강이 회복되면 가족들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시겠다고 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사면으로, 이미 납부한 추징금 35억원 외 별도로 부과된 벌금 180억원 중 미납한 150억원을 면제받았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선을 70여 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족쇄가 풀린 박 전 대통령이 일정 부분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끌었던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박 전 대통령의 향후 관계 설정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병원 치료 기간엔 침묵을 지키며 정치적 메시지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있는 동안 정치인은 어떤 분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