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촉발한 ‘멸공’(滅共·공산주의를 멸망시킨다) 논란이 정치권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입만 살았다”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한다”며 일제히 정 부회장을 비판했고, 반면 국민의힘은 멸치와 콩을 인증하는 이른바 ‘멸공 챌린지’로 정 부회장 응원에 나섰다.
시작은 정 부회장이 지난 5일 소셜미디어에 숙취해소제 사진을 게시하면서 붙인 ‘멸공’이라는 해시태그(검색 주제어)였다. 정 부회장은 이전에도 종종 ‘멸공’ 단어를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해왔는데, 네티즌들은 이를 현 정부의 친북·친중 행보에 대한 우회적 비난으로 해석했다.
그러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정 부회장을 겨냥해서 “21세기 대한민국에 멸공이란 글을 올리는 재벌 회장이 있다.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민주당 김태년 의원도 “중국을 자극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정 부회장은 조 전 장관의 글을 스스로 SNS에 소개하면서 “리스펙(존경한다)”이라고 했다. 반어적인 표현으로 조 전 장관에게 각을 세운 것이다.
국민의힘도 멸공 논란에 뛰어들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지난 8일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이마트에서 멸치,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바로 ‘멸치+콩=멸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뒤이어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멸치·콩을 사거나 반찬으로 식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김진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다 같이 멸공 캠페인 어떨까요”라면서 이런 움직임을 독려하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오는 12일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주요 대기업 10곳의 CEO(최고경영자)와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참석 대상 기업에 신세계그룹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멸공 논란’의 여파라는 해석이 나온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이날 “이 후보가 당초 4대 그룹(삼성⋅현대차⋅SK⋅ LG) CEO와 노동이사제⋅중대재해법 등 현안과 관련한 경제 분야 토론을 계획했으나 참석 대상 기업들이 난색을 보이면서 10대 기업으로 확대됐다”며 “그렇게 되면 재계 순위(농협 제외) 10위인 신세계가 포함돼야 하는데, 신세계가 빠지고 13위인 한진이 들어왔다”고 했다. 경총은 이 후보와 간담회 참석 대상 기업으로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한화⋅GS⋅현대중공업⋅한진 등 10곳을 두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와 간담회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했던 간담회 형식도 토론회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 등을 논의하는 토크 콘서트로 바꾸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와의 간담회 대상 기업에서 신세계가 제외된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했다.
경총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신세계가 참석 대상으로 검토하는 명단에서 빠진 것은 맞지만, 경총의 24개 회장단사가 우선 참석 대상이기 때문에 제외됐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참석 대상 기업도 아직 협의 단계에 있어서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재계 11·12위이자 경총 회장단사인 KT와 CJ가 제외된 데 대해서는 “KT는 경총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오지 않아서 빠졌고, CJ는 손경식 회장이 경총 회장 자격으로 간담회에 참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