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로에 위치한 감사원 전경./이명원 기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감사를 주도한 유병호(55)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이 최근 인사에서 비(非)감사 부서로 전보된 것과 관련, 관가에선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반하는 감사를 벌인 데 대한 인사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공무원들의 혐의를 밝혀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가 정권에 ‘찍혔다’는 얘기다. 관가에선 “정권 코드에 맞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인사” “앞으로 어느 공무원이 원칙대로 일하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유 국장은 감사원 심의실장으로 있다가 2020년 4월 20일 공공기관감사국장에 임명됐다.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 요구로 시작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가 2차례 법정 기한을 넘기면서도 감사위원회에서 ‘보류’ 처분을 받는 등 난항을 겪자 담당 국장을 유 국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2019년 9월부터 월성 1호기 감사를 맡아온 유 국장 전임자 이모 국장은 감사원 선임 국장 보직인 산업·금융감사국장으로 이동해 “영전했다”는 말이 감사원에서 나왔었다.

월성 1호기 감사를 넘겨받은 유 국장은 그해 10월 20일 산업부 담당 국장 등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일부 산업부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문서 삭제 등 증거인멸 혐의 등과 관련된 자료를 검찰에 이첩하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감사 과정에서 원전 조기 폐쇄 과정과 관련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관련 공문서 수백 건을 삭제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 국장은 포렌식으로 증거를 복구하며 감사를 강행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무리하게 이뤄졌다는 감사 결론을 내렸다.

당시 최재형 원장은 국회에 나와 “이렇게 심한 저항은 처음 봤다”고 했다. 감사원이 피감 기관의 강한 저항을 뚫고 감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최 원장 신임 속에서 유 국장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란 게 감사원 내부 평가였다. 유 국장이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거슬렀다는 ‘죄’로 좌천됐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유 국장은 주변에 “공무원은 국민이 주는 봉급 값을 해야지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고시 38회인 유 국장은 감사원 안에서 ‘원칙주의자’란 평가를 받아왔다고 한다. 유 국장은 2019년 지방행정감사 제1국장으로 있을 때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전 정보를 이용해 친인척을 위탁 업체 직원으로 부당 취업시켰다는 이른바 ‘고용 세습 비리’ 의혹을 밝혀내 공사 사장 해임을 요구하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게도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 감사는 당시 여권 유력 정치인인 박 시장의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의 허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유 국장은 그 석 달 뒤인 그해 12월 여권의 비난을 받다가 비감사 부서인 심의실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그랬다가 넉 달 만에 최 원장이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유 국장은 2020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최재형 원장과 함께 출석해 여당 의원들에게 정부 정책을 방해하는 것이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유병호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이 지난 2020년 7월 국회 법사위 회의에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과 함께 출석해 유 국장이 맡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감사와 관련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으로부터 질의를 받고 답하고 있다. /jtbc

이와 함께 한국수력원자력이 탈원전 정책의 문제를 정리한 자료를 야당 의원실 요청에 따라 제출한 뒤 책임자였던 이 본부장을 지난 7일 방사선보건연구원으로 발령한 것도 사실상 보복성 인사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야당 의원실을 통해 한수원의 탈원전 비판 의견서가 공개되자 직원들에게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