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진통을 겪고 있다. 밖으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 4월에 검수완박 관련 법안을 다 처리해 못을 박아 버리자”는 강경한 주장이 분출하고 있지만, 안에서는 “단박에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역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대선 패배 후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 노선 투쟁의 불씨를 댕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게양대에 걸린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뉴스1

검수완박은 현재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중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 등 다른 기관으로 옮기고, 검찰엔 기소권만 남기는 게 핵심이다. 민주당에서 발의한 관련 법안은 크게 3건으로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소청법’, 황운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수청 설치법’,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수사청 설치법’ 등이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어느 하나만 통과돼도 우리나라 형사 사법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며 “관련법과 시행령 개정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검수완박 처리 강행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일부 강경파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강경파 의원 중 한 명이면서 민주당 법제사법위 간사를 맡은 박주민 의원은 28일 “(검수완박 처리에 대해) 당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그것을 추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했다. 경찰 출신인 황운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검찰 공화국의 공포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도는 수사·기소 분리뿐”이라고 했다. 민형배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혹여 검찰발 쿠데타로 개혁이 좌초될 수 있으니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강성 지지층은 친문(親文)으로 분류되는 박광온 법사위원장 등에게 “검수완박에 반대할 거면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식의 문자 폭탄을 퍼붓고 있다.

당 지도부도 이런 분위기에 끌려가는 양상이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3일 비대위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검찰 개혁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고, 박홍근 원내대표는 24일 원내대표 선거 때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 172석의 민주당은 검수완박 관련법을 다루는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에서도 전체 18석 중 12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 내에선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법사위부터 본회의까지 일주일이면 일사천리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예방 - 더불어민주당 박홍근(가운데) 신임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박병석(오른쪽)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박 원내대표와 동행한 박찬대 원내수석부대표가 박 의장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맨 왼쪽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 /국회사진기자단

그러나 당내 중도파·온건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적지 않다. 6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검수완박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 비대위원인 조응천 의원은 지난 2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5년 내내 한다고 하고 못 했는데, 50일 이내에 어떻게 할 것이냐”며 “지방선거 앞두고 단독 처리를 했다가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지”라고 했다. 민주당의 다른 법사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강행하면 중도층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도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인 만큼 야당과 협의해 진행하는 게 옳다”며 강행 처리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27일 “(검수완박은) 여유 있게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해 원내대표 선거 전과 비교해 기류가 바뀐 모습을 보였다. 박 원내대표는 “현 정부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할지 내부 합의에 따라 이행 경로를 만들어가면 된다”며 “당 내부부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강성 지지자들은 ‘빨리 처리해버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당 지도부로서는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새 정부와 맺을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머리가 아픈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조만간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회의를 열어 검수완박 처리 시기·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이 ‘산업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와 관련, 지난 25일 산자부를 압수수색한 데 대해 “사실상 종결 수준에 접어들었던 사건을 대선이 끝났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끄집어냈다”며 “검찰 독재의 시작 아닌지, 국민적 우려가 크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계속 덮어달라는 얘기냐”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감안해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