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경제를 잘 아는 인사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소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경제통’을 찾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는 윤 당선인이 전날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며 밝혔듯, 경제와 지정학적 위기가 복합적으로 닥쳐오는 ‘경제 안보 시대’를 헤쳐가기 위해 ‘경제 최우선’ 기조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선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당선인을 보좌하기 위해선 노련한 정치인이 비서실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4일 “윤 당선인의 경제 중심 기조가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며 “경제인이나 경제 관료를 중심으로 비서실장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비서실장은 관료 출신을 쓸 듯하다”며 “부처 장악 능력도 있으면서,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를 둘 사람을 찾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부에서 추진되는 모든 인사와 정책을 대통령에 앞서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정보가 모이기 때문에 비서실장의 1차적 판단이 대통령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경우도 많다. 명목상으론 국무총리와 부총리, 감사원장 등이 비서실장보다 높지만, 정치권에서 비서실장을 ‘부통령’ ‘소통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수위에서도 처음엔 4선 이상급 전직 의원과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후보를 추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초대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거듭 “국회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이나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도 일단 고사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윤 당선인도 “경제를 잘 아는 인사로 찾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과거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경제통인 한승수 전 총리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엔 ‘경제 우선’이라기보다는 ‘정치 9단’ 대통령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행정적인 뒷받침을 위해 기용하는 성격이 컸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이 경제 전문가를 비서실장으로 찾는 이유는 자신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선 경제가 핵심이란 판단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장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이념 중심’의 문재인 정권과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결국 이는 최고의 경제팀 구성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 값을 잡는 국토부 장관으로 정치외교학과 출신 직업 정치인인 김현미 전 장관을 임명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제형’ 비서실장은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청와대 힘 빼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실상 청와대는 차관급을 포함한 정부 내 고위직에 대한 인사권을 독점해왔고 그 중심에 비서실장이 있다는 평가다. 한 전직 장관이 “국장 인사도 내 손으로 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비서실장을 정무형이 아닌 정책형, 실무형으로 구성해 인사에 간섭하지 않고, 자신이 후보 시절 약속했던 책임총리, 책임장관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비서실장으로 9급 공무원 출신 초선인 서일준 의원을 기용했다. 서 의원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정무적인 판단보다는 일정 등 실무적인 일에 주로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인수위 일각에선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없는 만큼 비서실장만큼은 중량급 정치인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72석 절대 과반을 가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정국이 꼬였을 때 대통령을 대신해 이를 풀어줄 ‘해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비서실장을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실세형, 비서형, 실무형, 정치형 등 4가지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함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고 최근 대통령들이 정치에 약해 여야 협상이 안 풀린 측면이 있다”며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선 윤 당선인에게 실무형보다는 정치형 비서실장이 더 어울릴 수 있다. 정치가 풀리면 경제도 풀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