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양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요?”
“OMR 카드란 건데요. 답을 여기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칠하셔야 해요.”
17일 서울 목동고에서 열린 국민의힘 기초자격평가(PPAT) 고사장. 60대로 보이는 한 응시자가 옆에 앉은 30대 젊은 남성에게 OMR 카드 사용법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OMR 카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 응시자에겐 힘겨운 도전이었던 셈이다. 이 60대 응시자는 긴장한 듯 연신 다리를 떨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목동고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19개 고사장에서 지방선거 출마자를 대상으로 정당 사상 처음으로 기초자격평가를 실시했다. 이날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치러진 시험에는 목동고에서만 약 800명, 전국에선 총 4400명이 응시했다. 최연소 응시자는 20세, 최고령 응시자는 81세였다. 이날 고령 응시자들은 OMR 카드를 여러 차례 바꾸거나 시험이 끝난 뒤에 “수정할 것이 있다”며 감독관에게 읍소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번 시험은 기초·광역의원 출마 후보자를 대상으로 치러졌다. 지역구 출마자는 점수에 비례해 최대 10%의 가산점을 받는다. 비례대표의 경우 광역의원은 70점 이상, 기초의원은 60점 이상을 받아야 공천을 받을 수 있어 사실상 ‘데드라인’ 역할을 한다. 주로 경선으로 선발되는 기초·광역 단체장 후보들은 시험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사장 앞에서는 시장, 군수, 구청장 등 단체장 후보들이 나와 “시험 만점” 등을 외치며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단체장들 입장에서는 지역구 경선을 앞두고 기초의원 후보자들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유승민 전 의원의 딸 유담씨도 이날 경기도 고사장 앞에서 ‘수고하셨습니다. 파이팅’ 피켓을 들고 응원하기도 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응시자는 ‘정치인’ 답게 고사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대화하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험은 공직자 직무 수행 기본역량(당헌당규·공직선거법), 분석 및 판단력 평가(자료 해석 및 상황 판단), 현안 분석 능력(대북 정책·외교 안보·안전과 사회·청년 정책·지방자치) 등 3개 영역의 30문항이었다. 그러나 문항 30개가 A4 용지로 13장에 달할 정도로 지문의 양이 많아 1시간 안에 끝내기엔 버거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외워서 푸는 ‘학력고사형’이 아닌, 읽고 추론하는 ‘수능형’이었던 것이다.
1번 문항은 최근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을 겨냥한 듯 ‘국민의힘 사법 개혁 취지와 가장 거리가 먼 주장은?’이란 문제였다. 답은 1번으로 ‘사법 개혁은 법률 전문가에게 주로 맡겨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이어 ‘정강·정책에 기초해 작성한 연설문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공직선거법상 선거 비용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등의 문제가 나왔다. 당의 정강·정책이나 선거 법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틀리기 쉬운 문제였다. 이 외에도 ‘제시한 명제가 함축·반대·소반대·모순 관계 중 무엇인지’ 묻는 문제 등 대기업 직무적성검사와 유사한 문제도 출제됐다.
당원들을 대상으로한 시험인 만큼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문항도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에 대해 잘못 평가하는 사람’ ‘한미 동맹 현황을 잘못 설명하는 것’ 등을 고르는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 긍정적이지 않은 답을 고르면 정답이었다.
자격시험 도입을 주도한 이준석 대표도 이날 함께 시험을 치렀다. 이 대표가 심각한 얼굴로 시험을 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이 대표부터 점수를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이 대표는 시험 후 기자들에게 “(난이도가) 사실 예측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며 “처음 치러지는 시험이다 보니 여러 사후 평가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자격 평가에 대한 반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50대 응시자는 “눈도 침침하고 정해진 시간에 지문을 다 읽기도 쉽지 않았다”며 “4지 선다형 시험과 보수의 가치가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했다. 이 같은 비판에 이 대표는 “소위 국민이 싫어하는 ‘짬짜미 공천’을 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