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과정에 절차적 위법을 주장하는 이유는 법사위 소위, 안건조정위, 전체회의, 본회의 등을 거치며 법안 내용이 계속 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안,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안, 법사위에서 통과된 수정안, 마지막 본회의에 올라간 민주당 ‘셀프 수정안’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중재안에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은 지난 22일이다. 중재안은 검찰의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가운데 ‘부패’와 ‘경제’만 한시적으로 남기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중재안이 공개된 이후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국민의힘은 공직자·선거범죄를 일정 기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면서 재논의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박병석 중재안’을 기초로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착수했다.
민주당은 지난 26일 하루 만에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안건조정위원회-전체회의까지 순차적으로 열어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켰다.
첫 단계인 법안소위에서는 정의당 제안에 따라 선거 범죄 수사권을 연말까지 검찰에 남겨두는 문안이 삽입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이 “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올해 연말까지만 허용하면 지방선거 출마자들만 해당하고 국회의원들은 다 빠져나가는데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항의했지만 묵살됐다.
민주당은 법안심사 소위에서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단독으로 소위안(민주당안)을 의결했다.
법안소위-안건조정위-전체회의까지 법안이 급하게 넘어가면서 양당이 합의했던 문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로 통과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문구가 ‘부패·경제범죄 등’이다.
양당은 안건조정위가 열리기 직전 ‘부패·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되어 있던 것을 ‘등’으로 바꾸기로 했다. 수사 범위를 확대할 여지는 남겨두자는 데에 여야가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안건조정위가 열리자 민주당은 부패·경제범죄 중의 중대범죄’로 되어 있는 소위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도저히 회의가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라 소위안(민주당안)으로 처리됐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는 스스로 고친 ‘셀프 수정안’을 상정했다. 여기에서는 ‘부패·중대범죄 등’ 문구가 다시 되살아났다.
국회의장 중재안은 송치 사건의 범죄 단일성·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별건수사 금지)했지만, 본회의 상정안에선 ‘검사는 송치 사건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또 수사·기소 검사를 분리하고, 검찰 직접 수사 부서의 인원 현황을 국회에 보고하게 하는 논란 조항이 포함됐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검수완박안(案)이 아니라 검수범벅안”이라면서 “어찌나 졸속으로 법안이 수정됐는지 국민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회의원들조차도 세세한 내용에서 혼동을 일으킬 지경”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 중재안이 파기된 것”이라면서 후속 조치 논의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8일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중재안에 담긴 ‘사개특위 구성’에 협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국회의장 중재안이 사실상 파기됐다”며 “(중재안이) 원천 무효가 됐다”고도 했다.
여야는 최초 합의 당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 등을 논의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1년 6개월 안에 중수청을 발족시킨다는 내용이다. 중수청이 출범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도 폐지된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후속 논의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 “사개특위 구성이 무산되는 수순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방적 합의 파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우리는 (여야) 합의서와 합의 정신에 입각해 관련 입법과 후속 조치를 계속 취해 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