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29일 코로나 손실 보상을 위한 2차 추경안에 합의한 뒤 서로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고 했다. 자신들의 ‘결단’으로 추경안이 처리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날 자정에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은 박병석 국회의장의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여야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차기 국회의장단이 선출될 때까지 기다리면 추경안 통과는 한없이 늦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 하루 만에 돈이 바로 지급되는 것도 이례적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내일 오후부터 바로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전 8시에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오전 9시까지 대통령 재가까지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대선을 앞두고 지급된 1차 추경은 지난 2월 21일 본회의를 통과한 뒤 이틀 뒤(2월 23일)부터 지급됐다.
당초 민주당은 추경안은 합의하되, 지급 시점을 지방선거 이후로 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또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등 민주당 수도권 후보들은 이날 공동입장문을 내고 “대승적 차원에서 2차 추경을 결단해달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번 추경안과 관련한 “영수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협상 최대 쟁점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 손실보상 소급 적용 문제였다. 정부·여당은 추경안에 담긴 최대 1000만원 지급이 소급 적용이나 마찬가지라고 했고, 민주당은 소급 적용 예산 10조원 이상을 새로 반영해야 한다고 맞섰다. 당정의 ‘돈풀기’ 전략에, 야당은 소급 적용 카드를 꺼내들고 ‘묻고 더블로’ 전략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 같은 ‘묻고 더블로’ 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추경 때마다 국민의힘이 주로 쓰던 방식이었다.
결국 여야는 이번 추경의 실질 지출 규모를 정부안(36조4000억원)보다 약 2조원 늘어난 39조원으로 확대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지방 교부금 등 법적으로 반드시 내려보내야 하는 지방 이전 지출까지 합치면 전체 규모는 당초 59.4조원에서 62조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지급 대상은 당초 정부안(370만명)보다 1만명 정도 늘어난 371만명으로 확정됐다. 지급 대상 매출액 기준을 정부안인 30억원 이하에서 50억원 이하로 높였기 때문이다.
비율로 따졌을 때 여야가 지원을 가장 많이 늘린 대상은 대리기사와 택시기사, 버스기사 등으로 50~100%로 지급액을 높였다. 이들은 일반 유권자들과 접점이 많아 선거 전 민심 동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야는 보험설계사나 대리기사와 같은 특별고용 근로자, 프리랜서,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금을 기존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크게 늘리기로 했다. 정부 추산으로 이번에 지원 대상이 되는 특별고용·프리랜서 근로자는 약 80만명, 저소득 문화예술인은 약 3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약 16만명에 달하는 법인택시, 전세버스 기사에 대한 지원금도 100만원 늘린 3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약 100만명의 근로자에 지원금 100만원씩이 더 나가는 셈이다.
여기에 물가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취약계층 약 225만 가구에도 긴급생활지원금으로 4인 가구 기준 75만~100만원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안도 확정됐다. 또 축산농가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이자율을 당초 1.8%에서 1%로 낮추기로 했고, 어업인에게는 유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여야 합의가 선거를 앞두고 과도하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50조 추경”을 공약했을 때만 해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일었지만, 이번엔 지방교부금 등을 더해 총 62조원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대규모 돈 풀기로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평가다. 또 여야가 지방선거 표심에 집착한 나머지 재정건전성과 인플레이션 등 나라의 거시 경제적 틀을 도외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