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종합상황실. 지도부와 의원들이 퇴장해 텅 비어 있다. photo 뉴시스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5월 30일 만난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다소 언짢은 심기를 내비쳤다. “구도가 불리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선거라고 봤고 그런 흐름이 분명 있었는데 주변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탄력받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김동연이 진 거라고 보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 거다.”

그래서일까. 경기도지사 후보로 뛰던 김동연 후보의 메시지는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달라졌다. 초반 그의 메시지는 윤석열 정부 견제와 후보 인물론에 맞춰졌다. 그런데 조금씩 ‘반성’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3주기를 맞아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 추도식에 참석한 김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국민께 많은 실망을 드렸다. 대선 패배의 아픔을 안겨드렸다”며 “저부터 당을 혁신하는 데에 나서겠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민주당으로, 국민이 응원하는 민주당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이 메시지에 추가된 걸 두고 캠프에서는 “쉽지 않은 현장의 분위기 탓”이라고 했다. 야당의 마이너스 효과 탓에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에게 추월당한 뒤 생긴 변화라는 거다. 그만큼 당 중앙이 현장의 민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당의 존재를 다시 묻는 선거”

전국정당을 자랑하던 민주당은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5명의 광역단체장(호남 3곳 포함)만을 배출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이후 져본 적이 없던 세종시에서조차 패했다. 그렇게 받아든 성적은 광역단체장 기준 12 대 5였다. 줄곧 뒤지다 투표 다음 날 새벽 5시30분이 돼서야 역전에 성공한 김동연 후보가 그나마 경기도 수성에 성공하며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당 내부에선 “수도권에서 인천만 이겼던 2010년 지방선거보다 낫다”는 자기 위로의 목소리도 있지만 지난 대선 패배를 두고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 논리는 그간 민주당에 독이 돼 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민주당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게 올 수밖에 없는 그런 선거였다. 4년 전,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의 결과가 너무 좋았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곳을 민주당이 가져갔다. 기초자치단체장 226곳 중 민주당이 차지한 게 무려 151개였다. 광역의원만 해도 민주당 몫이 647명, 자유한국당이 116명이었으니 일방적으로 승리한 선거였다. 4년 전의 절반의 성적만 거둬도 성공일 거라는 예상에 지지자들도 허탈했을 거다.

앞선 김동연 캠프 관계자는 “당의 존재를 다시 묻는 선거”라고 말했다. “지지율 50%로 출발한 정부에 대한 실망을 야권이 수렴하길 원했던 민심이 분명히 있는데 우리가 받지 못했다. 솔직히 말할까. 국민의힘 후보들이 막판에 여기저기에서 예산 폭탄 투여한다고 대놓고 선거운동하는 건 정말 뻔뻔하고 부끄러운 방법이다. 그런데 선거전략으로만 보면 그만큼 승리에 절실하다는 걸 보여주면서 보수층을 몇 퍼센트라도 움직이게 했을 거다. 거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나. 가뜩이나 구도가 힘든 선거에서 비대위원장과 위원들은 뭐하고 돌아다녔나. 이번 선거의 기조는 뭐였나. 선거에서 뛰고 있는 나도 기억 안 난다. 후보들 개인 역량에 기댈 뿐 당이 뭘 하겠다는 건 하나도 없는, 역대급 무책임한 선거였다.”

야권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묻는다. “당이 왜 이렇게 무능했냐”고. 패배의 원인을 되짚는 이들은 선거를 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기능 상실을 지적한다. 경기 지역 한 의원의 진단이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는 경향이 수도권에서부터 남하했다. 위에서 내려간 이 흐름 때문에 충청권도 뒤집어졌다. 수도권에 선택과 집중을 해서 그런 하락 추세를 막아야 했는데 준비할 시간도 빡빡했다. 당 자체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선거 막바지에 투표율의 위험을 경고했다. 투표율이 빠지면 경합지역에서 우리가 불리한데 그런 문제를 빠르게 교정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폭락한 시점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된 직후부터다. ‘탈당 꼼수’를 활용해 ‘검찰 수사권 분리’를 강행했던 시점에서부터 꺾이기 시작했고 청문회 정국에서는 20%대까지 추락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헛발질과 자질 미달의 질문이 나오면서 ‘발목잡기’ 프레임에 걸렸고 지지층의 기대를 접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흐름이 수치로 두드러진 곳이 충청권이었다. 5월 셋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충청권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은 13%에 불과했다. 당시 대구 경북의 민주당 지지율이 9%로 가장 낮았고 두 번째로 낮은 곳이 충청권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자치단체부터 기초의회까지 나서는 민주당 후보들에게 빨간불이 켜진 순간이었다. 최악의 경우로 갈 수 있다는 신호는 떨어졌지만 당 지도부의 경계 수준은 미흡했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5월 13일 경기 수원시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민주당 제1차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윤호중 상임선대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photo 뉴시스

선거의 주체도, 전략도 알 수 없어

‘선택과 집중’이 결여됐다는 비판에 도달하면 필연적으로 당내 리더십의 문제가 튀어나온다. 지방선거 이후 나온 평가 중에 흥미로운 말이 있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자생당사(自生黨死)’라는 단어다. 박 전 원장은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고 밝혔다. 얼핏 인천 계양을 선거에서 이긴 이재명 민주당 총괄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저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말은 더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린다.

정당은 위와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받아 작동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민주당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은 참여 혹은 관망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적극적인 참여로 기울었다. 윤석열 정부를 도와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1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이다. 따라서 대선 연장전 격인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의원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공천을 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구조에서 리더의 판단은 조직의 판단이 된다. 격전지로 예상되던 경기도와 충남 등에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 후보로 배치된 것을 국민의힘 내에서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조직이 총력을 다해 움직였다. 만약 이런 시도가 실패한다면 위로부터 누가 요구했는지 그 원천이 명확하기 때문에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그런 구조다.

그 반대의 모습은 수평적 연합체의 성격을 띤 정당이다. 민주당은 이 구조에 가깝다. 계파 갈등이란 말이 사라진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여러 계파가 어느 정도 서로의 지분을 인정하는 구조다. 보수정당은 생사를 걸고 공천권을 쟁탈하기 위해 리더십을 두고 다투지만 민주당은 공천권도 때에 따라서는 이런 지분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는 노영민 후보를 충북지사 선거에 단수 공천하고 송영길 전 대표를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여기에 박지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반발한 것도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계파의 문제로 비쳤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정 세력의 이해를 반영한 ‘계파공천’이 아니라 ‘국민공천’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겠다”며 ‘계파’라는 단어를 공천과 결합했다. 이는 당내 시스템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연합체적인 성격의 정당에서는 리더가 온전히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 특히 비대위 체제로 선거를 치른 민주당은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조차 아리송했다. 선거는 누가 치르는지 알 수 없고, 선거에 지면 왜 졌는지 모르는 정당이 됐다. 민주당의 한 원외 지역위원장은 “탄핵 이후에 상대당의 실책에 기대어 몇 번 이긴 게 커다란 착시였다. 진보개혁 진영에 유리한 형태로 밭이 바뀌었다며 20년 집권 같은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알고 보니 밭은 그대로였고 우리와 상대가 서로 뒤바뀐 거다”고 말했다.

위로부터 리더십이 붕괴된 장면은 윤호중·박지현, 두 비대위원장 간의 갈등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측에는 각 지역 조직의 방문 요청이 쇄도했다. 지역에서부터 발생한 요구가 위로 올라갔다. 지역 구석구석을 방문하도록 아래로부터 신호가 들어왔다.

지난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photo 뉴시스

이재명의 개인기도 안 통했다

민주당은 정반대였다. 아래에서는 “도대체 중앙당이 하는 게 뭐냐”고 따져 물었고 비대위가 우리 지역에 안 왔으면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리셋하라고 만들어 놓은 비대위 체제가 오히려 우리를 심판받게 만들었다”(민주당 서울시의원 낙선자)는 아래로부터의 불만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권한과 책임 구조가 무너지고 위로부터 리더십이 무너져 내린다면 리더의 개인기로 돌파할 수도 있다. 이재명 상임고문의 인천 계양을 등판에는 그런 개인기에 대한 기대가 깔렸다. 인천과 경기 선거를 쌍끌이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사실상 지방선거 완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이 고문도 책임론 공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에서는 인천 계양을의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행을 택하고 그 빈자리에 대선 패배 3개월 만에 이 고문이 들어간 점, 그리고 선거 막판에 이 고문이 던진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전체 판세에 준 영향 등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상호 의원은 선거 직전 “이재명 효과가 큰 재미를 못 봤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2030세대 표심을 확보하겠다며 등장한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선거 막바지 쇄신의 일환으로 꺼내든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용퇴론’은 당내 분란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있다. 박 위원장을 설득한 이도 이 고문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당은 졌더라도 이 고문은 생환했다. 김동연 후보도 그의 뒤를 이어 경기지사가 됐다는 건 그나마 이 고문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다행인 점이다. 이 고문의 다음 행보는 8월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다. 당내에서 목소리가 커진 김동연 당선인으로서는 당내 세력이 없는 만큼 자신을 영입한 이재명 고문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정치적 파트너로서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할 입장이다. 김동연 당선인은 지난 6월 2일 아침 당선이 확정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개혁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도민과 국민 여러분께서 민주당 변화에 대한 씨앗을, 또 민주당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저에게 이런 영광을 주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민주당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도, 또 그 씨앗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개혁’과 ‘씨앗’은 앞으로 민주당에서 전개될 권력투쟁을 암시하고 있다.

당권 접수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이재명 고문의 경쟁자로는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 홍영표 의원 등 친문(親文) 후보들과 86그룹의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이 꼽힌다. 친문 핵심 ‘3철’의 전 전 장관과는 2018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맞붙었던 적이 있다. 홍 의원은 바로 직전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전 대표와 박빙의 승부를 겨루었다. 당시 송 전 대표는 35.60%를 얻어 홍 의원(35.10%)을 0.59%포인트 차로 눌렀는데 우원식 의원(29.38%)으로 친문 표심이 분산된 덕에 이겼다는 평가가 있었다.

‘문재인식 모델’ 통할까

물론 이 고문의 도전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나면서 친문 의원들이 행정부에서 당으로 대거 돌아왔다. 게다가 이 고문이 직접 나선다면 위기감이 커진 당내 주류의 응집력이 커질 수 있다. 이 고문의 리더십은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대변되는데, 정파 연합적인 성격을 띠는 민주당의 의사결정 흐름과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런 리더십에 ‘쇄신’ 요구가 따라붙었을 때 보다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된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당권 출마자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86 용퇴론’ 문제, 이 고문이 대선 기간 쇄신안으로 꺼냈던 ‘동일 지역구 4선 금지’ 등은 민주당 주류를 건드리는 인화성 높은 이슈다. 게다가 쇄신의 대상이 된다는 건 ‘기득권’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일이라 감정적으로도 앙금이 생긴다.

여기에 그동안 미루었던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둘러싼 냉정한 검토도 이뤄질 수 있다. 필연적으로 ‘대선 후보의 문제’와 ‘전 정부의 문제’ 중 무엇이 패배를 불러왔는지 부딪치게 된다. 이런 여러 차원의 충돌로 당권 경쟁의 대결 구도는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전당대회 이후도 문제다. 이 고문의 행보는 ‘문재인 모델’과 닮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총선 1년 전인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당시 반대 진영에서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깼다고 반발했다. 문 전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45.30%였는데 박지원 당시 의원(41.78%)을 크게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당권을 잡은 뒤부터는 민주당 내에서는 ‘친노패권주의’ 논란이 번졌고 내홍은 깊어졌으며 그 끝은 결국 탈당으로 마무리됐다. 안철수계와 김한길계를 비롯한 비노·호남계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을 나가며 국민의당이 만들어졌다.

물론 과반을 넘는 거대 정당의 분당은 이뤄지기 쉽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대선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이재명계와 비(非)이재명계 간 앙금이 완전히 희석되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8월 전당대회는 용광로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친이(이명박)계와 친박(박근혜)계 간 충돌이 보수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는 과거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쪽이 당을 장악하냐보다 중요한 건 당을 장악하는 쪽과 장악당하는 쪽이 상대를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생긴다. 이럴 때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미소지을 수 있다. 민주당 내부 갈등이 외부로 폭발한다면 국민의힘이 그리는 정계개편 시계의 초침이 돌아갈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8월은 여러모로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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