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공포(公布)된 시행령이 4602건에 달하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공포한 시행령(3667건)보다 25.5%가량 증가한 수치다. 국민의힘은 “탈(脫)원전·적폐 청산에도 ‘시행령’을 적극 활용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고 했다.
법제처가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 4602건의 시행령(대통령령)이 공포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포된 시행령은 3762건, 박근혜 정부(4년 2개월)에서는 3667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로 접어들면서 시행령 공포 건수가 1000여 건가량 급등한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 홍보에 사용하도록 되어 있던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신재생에너지 홍보에 쓸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률 개정 대신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서 탈원전·재생에너지 정책 추진에 나선 것이다.
2020년 문 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검사정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검찰청 차장검사급 일부 보직을 없애고,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도 축소하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선 ”시행령을 검찰총장 압박용으로 썼다”는 얘기가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열린 첫 당정협의에서 민주당 법사위원들에게 “법 개정 없이 추진이 필요한 검찰 개혁 과제들을 발굴해서 불가역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법무장관이 ‘입법 패싱’을 공언한 셈이지만, 당시 민주당 내에서는 “검찰 개혁 성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면서 독려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은 “국회가 정부의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관련 법을 발의한 조응천 의원은 “국회가 위임하지 않은 행정입법만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것은 ‘입법완박(입법 권한 완전박탈)’”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입법하면 ‘신속한 추진’이던 것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입법완박’으로 돌변하는 이중성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