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석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이대준씨 죽음에 대한 국방부 입장 번복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23일 제기됐다. 당초 국방부가 “북한이 시신까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사흘 만에”시신소각이 추정된다”고 말을 바꾼 배경에 서 전 차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전 차장은 “‘소각 추정’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단장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방부에서 신범철 국방 차관 등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에서 왜곡을 지시한 책임자가 서주석 전 차장”이라며 “서 전 차장 지시로 국방부에 공문 지침서를 보내 ‘시신 소각’으로 확정한 입장을 바꾸라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씨가 숨진 지 이틀만인 2020년 9월 24일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이 우리 국민에 총격 가하고 시신까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며 “이러한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사흘 뒤인 9월 27일에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에선 “시신 소각이 추정되며,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북한과의)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말을 뒤집었다. ‘시신소각 만행 확인’이라던 종전 입장이 ‘소각 추정’이라는 모호한 말로 둔갑한 것이다.
이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사건 관련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이 하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방부 설명이다.
하 의원은 “청와대에서 ‘소각 추정’으로 왜곡하라고 지시를 내린 사람이 서주석 전 차장이란 것을 확인했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명의로 국방부에 ‘시신소각에 대한 입장을 바꾸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서 전 차장은 당시 NSC 사무처장직도 겸하고 있었다.
서 전 차장은 본지통화에서 “NSC 회의문서가 배포되는 체계를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NSC 회의에서 시신소각이라는 우리 측 주장, 부유물 소각이라는 북측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검토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있었다”며 “NSC 사무처가 회의문서를 망(網)으로 배포하는데, 그걸 사무처장이 왜곡 지시했다는 것은 엄청난 곡해”라고 했다.
이와 별개로 국방부·해양경찰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씨가 북한군에 붙잡혀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사망할 때까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TF에 보고하기도 했다.
이씨가 북한군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군이 인지한 것은 실종 이튿날인 9월 22일 오후 3시 30분이었다. 문 전 대통령에게는 오후 6시 36분 서면보고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문 전 대통령이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국방부·해경의 공통된 보고 내용이다. 결국 이씨는 대통령 보고가 이루어진 지 3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
하 의원은 “해경 뿐만이 아니라 국방부에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구조 지시가 없었다고 한다”며 “구조 지시 뿐만이 아니라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고 했다.
이씨의 ‘자진 월북’의 근거라던 감청정보 또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국민의힘 판단이다. 이 감청정보는 현장 북한군과 상부의 보고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7시간의 대화내용, 수백 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에서 ‘월북’이라는 표현은 단 한번 나온다고 국방부는 이날 TF 측에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