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靑안보실 차장 문자로 … 북송사실 드러나 - 2019년 11월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이 휴대전화로 받은 메시지. 김 차장은 당시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부터 ‘북한 주민 2명이 추방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이 내용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문재인 정권은 귀순 어부 2명의 강제 북송을 비공개로 진행했다가, 이 메시지가 공개되고 난 뒤 사건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덕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귀순한 어부들을 송환하라는 북의 공식 요청이 있기도 전에 먼저 북측에 “인계하고 싶다”고 통지한 사실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문건을 통해 26일 확인됐다. 당시 정부의 ‘북송 의사’ 다음 날 북은 바로 ‘보내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문 정부는 2019년 11월 2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넘어온 북한 어선을 붙잡았다. 이후 정부 합동 조사 사흘 만인 11월 5일 문 정부는 “북측에 ‘어민들을 추방하고, 선박까지 넘겨주고 싶다”고 통지했다. 귀순한 탈북민 조사는 몇 달이 걸릴 때도 있는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조사를 끝낸 것이다.

그다음 날인 6일 북은 “인원·선박을 인수하겠다”고 했고, 7일 귀순 어부의 강제 북송이 이뤄졌다. 북이 공식적으로 송환을 요구하기도 전에 문 정부가 먼저 ‘보내겠다’고 했고 어부와 선박 북송이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과거 북은 귀순자를 북송하라는 요구를 자주 했지만 한국 정부가 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국가안보실은 “북한 주민을 추방한 첫 사례로서, 흉악범 도주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정부가 적극 대응했다”고 자평했다. 어민들은 포승에 묶이고 안대로 눈까지 가린 채 판문점으로 이송됐다.

북측이 비공식 채널 등으로 귀순 어민들의 송환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관련 사실을 밝힌 적은 없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정리한 ‘추방 절차’에도 북측의 비공식 요청이 있었는지는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북이 송환을 먼저 요구했다면 그 내용을 굳이 감출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진상 규명 태스크포스(TF)는 문 전 대통령이 11월 5일 김정은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송부하면서 귀순 어민 인계 의사도 함께 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김정은이 부산으로 와 달라”고 설득하려고 귀순 어민 북송을 먼저 제안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이들 어민 2명은 조사 과정에서 “귀순하고 싶다”고 했지만, 문 정부는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면서 묵살한 바 있다. 태영호 의원은 “김정은을 모시려 탈북 어민을 제물(祭物)처럼 다뤘다면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을 흉악범이라고 단정한 정부 측의 심문 기간은 이례적으로 짧았다. 통상적으로 탈북자들은 수개월에 걸쳐서 심문받는데, 귀순 어민의 조사 기간은 3~4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합동 조사단은 이들이 동료 16명을 살해한 현장인 소형 어선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북측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1월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목선을 예인하고 있는 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승선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승선했던 목선으로, 탈북 주민 2명은 11월 7일 북한으로 추방됐다.2019.11.8 /통일부

우리 정부가 ‘증거인멸’ 우려에도 신속하게 선박을 소독하고 북측에 넘긴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 측은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을 위한 통상적 조치”라고 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2019년 6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해안 나포 어선 39척에 대한 검역·소독 내역을 분석한 결과, 국가정보원이 소독을 의뢰한 사례는 귀순 어민이 타고 온 오징어잡이 어선이 유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적으로 선박소독 요청은 해경이나 검역주무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의뢰하는데, 범죄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 오징어잡이 어선만큼은 국정원이 직접 챙겼다는 의미다. 안 의원은 “어선 소독이 통상적 대응이라던 해명과는 달리 당시 국정원의 대응은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했다.

우리 정보 당국이 감청 등으로 살인 사건 정황을 사전에 파악했다고 해도 흉악범 단정은 성급했다는 비판도 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흉악범이라도 헌법상 우리 국민인 만큼 우리 정부가 재판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