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일 의원총회를 열고 지도 체제를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했다. 당 지도부는 전국위 의결 등을 거쳐 오는 15일 이전에 비대위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날 의총 후 전국위 개최를 의결하기 위한 최고위원회 소집이 정족수 부족으로 불발되는 등 실제 비대위 출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당내에선 여전히 비대위 요건이 되는지 등에 대한 정당성 우려도 크다.
국민의힘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당이 비상 상황이라는 것에 의원들이 의견을 모았다”며 “의원총회에서는 의견을 모았고, 실제 비대위 발족과 관련된 의결은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한 의원은 “비대위 출범 후 최대한 속도를 내면 9월 말쯤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의총에서는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대위를 둘 수 있다”는 당헌 96조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의견 수렴이 이루어졌다.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 89명 가운데 김웅 의원을 제외한 88명은 ‘당이 비대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를 약 50분 만에 서둘러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김웅 의원이 “이의 있습니다”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당초 국민의힘 지도부 내부에서는 비대위 전환 요건인 ‘최고위 기능 상실’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비대위 전환에 적극적인 친윤계에선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대위를 둘 수 있다”는 당헌 문구를 부각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법 조항을 따질 일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하는 비상 상황이어서 비대위로 전환하면 된다”고 했다. 당헌·당규 해석이 모호한 부분들을 의원들의 ‘정치적 합의’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이준석 대표 측은 “당의 기존 해석대로 최고위원이 전원 사퇴해야 ‘최고위 상실’로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의총 직후 취재진이 ‘반대 의견은 없었나’라고 묻자, “특별한 거 없이 (합의됐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은 드러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일부 중진 의원은 이날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한 간담회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자”며 사실상 비대위 출범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총 결의에도 비대위 출범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권 대행은 이날 의총 후 전국위 개최를 위한 최고위를 소집하려 했지만 정족수(5명) 부족으로 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대표와 가까운 정미경·김용태 최고위원이 불참한 상황에서 조수진 의원이 “이미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해, 참석 가능 인원이 4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당 지도부는 조 의원이 이미 공식 사퇴한 만큼 최고위원 숫자가 현행 8명(이준석 대표 포함)에서 7명으로 줄어, 과반 정족수가 4명이면 된다는 논리로 이르면 2일 최고위를 다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대표는 이와 관련, 페이스북에 “사퇴 선언을 한 최고위원을 모아서 표결한다는 것 자체가 지난 1년간 경험해온 논리의 수준”이라며 “그 와중에 숫자 안 맞아서 회의를 못 연 것은 양념”이라고 했다.
여기에 전국위 의장인 서병수 의원이 ‘비대위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서 의원은 본지에 “비대위로 전환할 합당한 명분과 당헌·당규상 근거를 못 찾겠다”면서도 “규정상 최고위에서 의결하면 (전국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전국위를 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김용태 최고위원도 이날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측은 비대위 출범과 관련한 법적 조치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권 대행이 소집한 최고위원 간담회엔 성일종 정책위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불참하는 등 당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권 대행이 사퇴하고) 새 원내대표에게 비상대권을 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