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정부가 24일 논의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안은 문재인 정부의 ‘보편적 복지’에서 윤석열 정부의 ‘맞춤형 복지’로 전환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국가 예산을 저소득층과 장애인, 농어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강화에 집중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대신 지난 정부에서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됐던 지역 화폐 예산 등은 상당 부분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구직을 단념했다가 다시 취업 프로그램을 이수한 청년에 한해 300만원의 도약 준비금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 진보 정부에선 청년 예산 등을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적극적으로 구직 의지를 보이는 청년들에게 혜택을 몰아주겠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전세 사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증보험 가입비 월 6만원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신규 복지 재원은 저소득층·장애인에게 집중된다. 국민의힘은 고물가에 따른 지원 대책으로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 등을 지원하는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를 50% 인상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동절기 에너지 바우처 평균 지급액이 약 1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18만원 정도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 중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족, 소년소녀 가정 등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또 “장애인 고용 장려금을 현행 (월) 30만∼80만원 정도 지급하는데 하한에서는 20% 정도, 상한에서는 10% 이상을 과감하게 올려달라는 요구를 했다”며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 저소득 장애인에게 월 5만원 교통비를 신규 반영해달라는 요청도 했다”고 했다.

농어민에 대한 지원 강화도 같은 맥락이다. 당정은 농업직불금의 과거 지급 실적 요건을 폐지해 56만명이 추가로 농업직불금을 받도록 하고, 4만7000명에 달하는 소규모 어촌마을 어가나 어선원에 대한 직불금 신설을 당의 요청으로 정부가 검토해 반영하기로 했다. 또 농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현행 20%를 깎아주는 농수산물 할인쿠폰 지급 대상을 내년에 2배 이상 확대해 현재 590만명에서 내년엔 1700만명 정도로 늘리기로 했다. 여당은 정부에 보훈 급여와 참전명예수당에 대한 대폭 인상도 요청했고, 서울 도심에 ‘대심도 빗물 터널’을 만들기 위한 설계비를 내년 예산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 빗물 터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최근 서울 강남 물난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정은 이를 위한 재원은 기존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예산안 총지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총지출(1·2차 추가경정예산 포함해 679조5000억원) 규모보다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 해 예산을 전년(추경 포함)보다 적게 편성하는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고 했다.

우선 문재인 예산으로 불리며 올해 예산만 33조7000억원에 달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뉴딜 사업 중 국민의힘이 ‘단기 알바’ 양성 예산이라고 비판한 ‘디지털 뉴딜’ 명목의 각종 사업 예산(9조3000억원)의 재조정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직접 일자리 지원 사업도 구조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올해 7000억원에 달하는 지역 화폐 예산도 내년 예산에서 전액 삭감될 가능성도 있다. 지역 화폐 예산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의 요청으로 대폭 확대됐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문재인 정권은 빚을 400조원 늘려 오늘만 사는 정권이었다”며 “대대적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 재정을 유지하면서도 민생을 돌보는 묘책을 마련할 시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