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30일 의원총회에서 새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앞서 법원이 당의 ‘비상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주호영 비대위가 무산된 만큼, 이번에는 당헌·당규에 비대위 전환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의총에서는 “법원 결정에 위배된다”며 새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표결 없이 박수로 당헌 개정안이 추인됐다. 자진사퇴 요구를 받은 권성동 원내대표 거취 문제도 비대위 구성 이후로 미뤄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의원총회를 열고 새 지도체제 논의에 돌입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당헌·당규 개정을 통한 새 비대위 출범 말고 어떤 대안이 있나”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새 비대위 구성 후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오까지 진행된 이날 오전 의총에서는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현행 국민의힘 당헌 96조는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대위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헌 개정안은 여기에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 이상이 궐위된 경우 비대위 전환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조수진·김재원·정미경·배현진 최고위원은 이미 사퇴한 상황이라, 이런 내용의 당헌 개정안이 통과되면 비대위 전환 요건 또한 보다 명백해진다는 논리다.
그러자 판사 출신인 최재형 의원은 “당헌·당규를 개정해서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당 법률지원단 측에선 “이 전 대표가 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더라도 인용될 리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해진 의원은 “소송에 다시 져서 중상을 입을 위험성에 대한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위인설법(爲人設法·특정인을 겨냥한 법 개정)’이라는 반박도 제기됐다. 조경태 의원은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특정 개인을 내쫓기 위한 당헌·당규 개정은 아주 반민주적 행태”라고 했다.
오후 2시부터 속개된 의총에서는 중진 의원들이 권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를 잇따라 요구했다. 윤상현 의원은 “리더십을 잃은 권 원내대표로는 안 된다”며 “새로 선출된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아서 당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에 권 원내대표는 “추석 전에 (당 내홍을) 정리하고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를 못 믿느냐”고 맞받았다고 한다.
4시간가량 진행된 ‘마라톤 의총’에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좀처럼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별다른 설득 과정 없이 다수 의원들의 ‘박수 의결’로 새 비대위를 출발시키기로 했다. 새 비대위 출범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즉각 “당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인데, 박수로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한 중진 의원은 “하루 종일 반대 의견 들어 놓고 결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였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도 새 비대위 출범 결정과 관련해 “다선 의원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며 “(그런데도) 표결은 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측은 “몇 사람 반대 의견 냈다고 해서 지도체제를 다시 의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이 당헌·당규를 개정하기까지 추가적인 변수도 남아 있다. 당헌 개정을 위해서는 당 전국위원회가 개최되어야 하는데, 전국위 의장인 서병수 의원이 전국위 소집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당 기조국에서 서 의원을 찾아 뵙고 전국위를 열어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