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다는 대통령실 공식 해명이 나오면서 여야 진실 공방까지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을 난청으로 만드는 것이냐”며 반발했고, 국민의힘은 “자해(自害) 외교 그만하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발단은 윤 대통령이 22일 오전(한국 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회의장을 나서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000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한 게 방송 카메라에 잡히면서다. 인터넷에선 이 발언이 ‘미 의회(이 XX)가 법안 승인을 안 해주면 바이든 대통령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로 해석돼 퍼졌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고 해명했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것이다. ‘이 XX’ 역시 미 의회가 아닌 한국 야당을 지칭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말을 직접 들은 박진 외교부 장관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미국과는 상관없는 발언”이라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10억달러 이상을 기여하는 걸 볼 때 우리도 경제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며 “그래서 ‘내용을 (국회에) 잘 설명해서 예산이 통과되도록 하겠다’라는 취지로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논란의 발언이 나온 ‘글로벌 펀드 재정 공약회의’에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가 목표인 글로벌 펀드에 1억달러 공여를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도 “미국의 60억불이나 10억불 이상을 약속한 프랑스, 독일, 일본보다는 적지만 이전에 비해 늘어난 것”이라며 “(예산이 통과되도록) 대한민국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자신이 약속한 1억달러를 한국 국회에서 승인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부끄럽게 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날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처음 보도한 MBC를 비난하는 발언도 나왔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MBC 등 언론과 일부 야당이 날조 보도하고 비판했다”며 “국격과 국익은 대통령이 가장 책임이 크지만, 야당과 언론도 못지않은 큰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22일 아침까지 각종 모바일 메신저에서 지라시(정보지) 형태로 돌던 윤 대통령의 발언과 영상이 MBC가 ‘바이든’이라고 단정적으로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먼저 띄우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22일 오전 일부 출입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의 ‘바이든 발언’ 영상을 봤느냐”고 얘기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MBC가 자막을 단 것을 기점으로 대부분 방송과 인터넷 언론이 비슷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거짓 해명”이라고 주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거짓말은 막말 외교 참사보다 더 나쁜, 국민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윤 대통령은 외교 참사와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데 대해 국민께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대표 기관인 민주당 169명의 국회의원이 정녕 XX들이냐”라며 박진 장관과 김은혜 홍보수석, 대통령실 외교 라인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3일 “만약 그 용어가 우리 야당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많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정진석 의원은 라디오에서 “제 귀가 나쁜지 모르지만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명확하게 들리지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실 해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았다.
여권 내에서도 “윤 대통령 발언이 왜곡됐다면 왜 즉각 바로잡지 않고 늑장 대응을 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발언 영상은 22일 오전 9시쯤부터 인터넷에 빠르게 퍼졌지만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 표명은 13시간이 지나서야 나왔다. 대통령실은 뉴욕 현지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주최 리셥션과 이후 다른 만찬에 참석하는 등 외교 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상에 담긴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정확히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 윤 대통령 목소리 외에 주변 잡음이 많이 담겨 성문 분석 전문가 등의 분석 작업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여권 일부에선 국내에서 이 문제가 확산되는 동안 뉴욕 현지에선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