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주말인 23일 박홍근 원내대표와 조정식 사무총장이 잇따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은 모두가 일치단결하고 함께 싸워서 이겨내야 될 때”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대선 자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되면서 당이 술렁이자 내부 결속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의 대선 자금 수사에 대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논두렁 시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정치적 의도가 깔린 수사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재명과 운명을 같이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김해영 전 최고위원은 22일 페이스북에 “이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라고 썼다. 공개적으로 이 대표 퇴진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22일 새벽 김용 부원장에 이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까지 전부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김의겸 대변인은 22일 논평을 내고 “영장은 최종 판단이 아니고 마지막 진실은 재판 과정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지만, 민주당 안에서는 “검찰 수사를 조작 수사, 야당 탄압이라 했던 기존 프레임이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를 겨냥한 퍼펙트 스톰이 몰려온다”는 말이 나왔다.
내부 결속에 나선 지도부는 “저쪽이 노리는 게 야당 파괴와 분열”이라며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떳떳하다면 즉시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며 “오는 25일 국회 시정 연설 전까지 분명히 답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관련 25일 국회 시정 연설을 하는데 이때까지 특검 수용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야당을 탄압한 데 대한 대국민·대국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시정 연설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시정 연설 보이콧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김용민·황운하·민형배(무소속)·양이원영 등 처럼회 소속 의원과 안민석 의원은 주말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했다.
이 대표 퇴진을 언급한 김해영 전 최고의원을 향해선,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페이스북에서 “동지의 결백보다 검찰 수사를 더 신뢰하는 듯한 언동을 이해할 수 없다. 당내 분란을 초래할 경박한 언동을 부디 자중하기 바란다”고 했다. 김남국 의원도 “오로지 내부 분열만 조장하는 ‘기회주의적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최고위원 페이스북엔 “국민의힘으로 꺼져” “수박 쓰레기” 같은 비난 댓글이 1400개 넘게 달렸고,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김해영 제명’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하면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당내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 대표 측근이 구속되다 보니 이 대표의 사퇴 가능성, 사퇴 시 대안에 대한 얘기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만 원외에 있는 김 전 의원을 제외하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당장 이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다수 의견이다. 이 대표가 대선 자금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고,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이 대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인사들은 검찰이 이 대표에게 적용할 구체적 혐의 내용이 드러나는 순간이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원은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오면 현재 ‘이재명 지키기’로 통일돼 있는 당내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이미 이 대표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것도 대표 취임 직후와는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전재수 의원은 지난 17일 이 대표의 주식 매입에 “실망스럽다”고, 설훈 의원은 지난 20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본격화 분위기에 “이런 사태를 예견해서 대표 나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포스트 이재명’까지 거론된다. 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불법 정치 자금에 연루됐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면 비상대책위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벌써 이낙연 전 대표, 김부겸 전 총리, 우상호 의원 등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