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에 우려를 표한 지 하루 만에, 민주당 기획재정위 간사인 신동근 의원이 금투세 도입은 예정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15일 밝혔다. 이 대표의 금투세 도입 ‘신중론’을 친문(親文)계로 분류되는 신 의원이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당대표와 상임위 간사가 충돌한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로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앞서 14일 비공개 당 최고위 회의에서 “금투세 도입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미 투자자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굳이 지금 야당에서 추진해야 하느냐”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주식·펀드 등에서 발생한 소득 중 5000만원을 넘는 부분에 과세하는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때 도입이 결정돼 2023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하지만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금투세가 도입되면 시장 ‘큰손’들은 세금을 피해 떠나고 개미들이 주가 하락의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금투세를 2년 유예하는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국회 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금투세 유예는 ‘부자 감세’에 불과하다”며 관련 법 처리에 반대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금투세 도입에 부정적인 듯한 발언을 하면서 민주당이 유예 쪽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신 의원은 15일 오전 페이스북에 “지난주 목요일 민주당 기재위원 일동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며 “기재위 간사로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재위원 전원의 결의에 충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 의원이 쓴 ‘어떤 어려움’ 표현이 ‘이재명 대표의 반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 입장과 관계없이 금투세 도입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이날 밤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금투세는 금융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고 너무나 상식적인데 그동안 방기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년 전 금투세를 입법할 당시에도 도입에 대해 거센 반대가 있었다”며 “그래서 2년 유예했는데 또 유예한다고 치면, 또 시행 시기가 되면 반대가 일어날 것이고 금투세 도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민주당에서 금투세 도입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이 대표의 한마디에 당 전체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부글부글했다. 한 의원은 “금투세 도입이 ‘증권거래세 인하’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전체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더 크다”며 “오랜 논의 끝에 결정한 걸 대표가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금투세는 5000만원을 초과해 돈을 번 사람만 내는 반면, 증권거래세 인하는 소액 거래를 하는 투자자까지 모두에게 혜택이 간다는 것이다. 다른 의원은 “이 대표가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각종 세제 정책을 ‘초부자 감세’라며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해 오지 않았느냐”며 “당원을 포함해 일부 투자자가 금투세 유예를 강하게 요구하니까 정반대 얘기를 하는 걸 보고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민주당이 금투세 유예에 찬성하라는 글이 여럿 올라왔고, 이 대표가 관련 언급을 하자 한 당원은 “이 대표님, 유예에 동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금투세 유예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법을 만들었을 때와 지금의 정치·경제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한 의원은 “레고랜드발 금융시장 불안이 진행 중인데 금투세라는 새 변수를 투입하는 게 맞느냐”며 “금투세 도입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면 모든 질타가 민주당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정책위, 기재위,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모여 관련 논의를 했지만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상임위 차원의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당 지도부 차원에서 빠른 시일 안에 방침을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입장 표명에 대해서는 “대표의 개인적 의견이고 지도부 차원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