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에서 대통령실이 요청한 용산 청사의 시설관리 및 개선 예산 51억여원을 삭감 없이 전액 수용했다. 정치권에선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대통령실 용산 이전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예고했던 민주당이 청사 개선 예산만큼은 그대로 통과시킨 뒷배경에는 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한병도 민주당 의원의 찬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 회의록엔 당시 상황이 자세히 담겼다. 대통령실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근무하는 용산 청사의 낙후 현황에 대해 야당 의원들에게 사진 등을 제공하며 예산 협조를 요청했다. 대통령실이 여야 의원들에게 배포한 사진엔 용산 청사 내 낙후된 시설 모습이 찍혔다. 윤 총무비서관은 의원들에게 “통상 보면 새로운 아파트에 이사를 하더라도 관리비를 내듯이 지금 저희가 이사를 해 놓고 보니까 냉각탑이라든가 계단이라든가 이런 수선을 해야 될 부분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거나 시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시설을 정비해 나가는 예산이기 때문에 정부 원안을 그대로 해주십사 부탁드린다”고 했다.
당초 용산 청사 관련 예산을 삭감하려 했던 민주당도 이 사진들을 보고 적잖이 놀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박정 의원은 “내구연한 경과에 대한 전체 소요 예산이 67억이 잡혔는데, 지금 시설관리 및 개선은 51억이 잡혔다”며 “그러면 이거를 다 고치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그동안 이렇게 너무 오래된 시설들을 내구연한이 지난 걸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관리를 안 했다 그런 것들을 저는 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좀 든다”고 했다. 용산 청사 시설들이 내구연한이 한참 지난 사실에 공감을 표한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청사 개선 관련 예산안을 삭감없이 통과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이것 예산을 안 세울 수 없다. 해줘야 한다”며 “(청사 낙후 시설) 이런 사진은요 밖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세상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에 주차장이 파손되고, 이게 어이구야…이것 뭐 테이프로 묶어 놓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의원은 “이미 근무하기 전에요 이게 고장나고 뜯어지고 이 밑에 이런 문제가”라며 “이것 잘못하면, 안전 문제와 관련되는데, 안전진단이 국방부에서 한 번도 안 됐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곳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윤재순 총무비서관도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정말 놀랐다”고 했다.
한 의원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다 보니까”라며 “대통령이 일한다고 하면 사전에 완벽한 조사와 준비로 시스템을 완벽하게 하고 들어가야 한다. 참 답답하다”고 윤 비서관을 질타했다. 한 의원이 “이건 반영해 주십시오”라고 소위 소위원장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에게 건의했다. 이에 우 의원은 “역시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분 다운 발언을 했다”며 “한병도안으로 원안을 유지하자”며 예산안을 수용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정 민주당 의원은 작년에 비해 3억 7800만원 늘어난 부분을 감액하자고 했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한 의원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정부 예산안 대로 통과된 것이다.
민주당이 용산 청사 개선 비용에 협조한 건 그만큼 대통령실 이전이 졸속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한 의원은 현재 민주당 ‘대통령실 관련 의혹 진상규명단’ 단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진상규명단장조차 청사 내 낙후된 시설을 보고 예산 통과에 협조했다는 것만 봐도,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있어서는 안될 졸속 작품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