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회의원들은 3일 본지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정치 팬덤이 서로를 악마화하는데, 정치인이 말리기는커녕 여기 편승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양극화는 결국 유권자 아닌 정치인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모두 “정치적 승패만 따지지 말고 정치 성과물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의원들은 “정치권이 상대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수준이 이미 지켜야 할 선(線)을 한참 넘었다”고 했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3선,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은 “요즘은 여야 의원들이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사적으로도 상대를 싫어하는 것 같다”며 “상대 당 의원을 얘기할 때 ‘걔는 또라이’ 식의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정치적 제스처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상대 인격을 건드리고 모욕한다”고 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경기 양주)은 “노무현 정부 때도 국가보안법이나 사립학교법으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하다못해 회의 끝나고 식사부터 의원들 연구 모임까지 여야가 수시로 만나고 소통했다”며 “지금은 여당 의원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은 문화가 돼 버렸다”고 했다.
의원들은 극렬 지지층에게 스스로 의지하고 휘둘리면서 서로 밥 먹기도 민망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초선, 경남 창원마산합포)은 “여야가 쟁점 법안에서 격론 끝에 공감대를 이뤄도 강성 지지층이 분노하면 막판에 지도부가 합의를 뒤집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니 여야 의원도 이해와 타협보다 서로를 지적하고 비판하기 바쁜 것”이라고 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재선, 충남 논산·계룡·금산)은 “최악의 양극화 사례가 내로남불 아니겠느냐. 잘못을 했어도 우리 편이면 괜찮고 저쪽 편이면 조그마한 흠도 악마화한다”며 “일반 상식을 가진 국민이 보기엔 정치가 무슨 애들 장난하는 것처럼 돼 버렸다. 국회의원 300명이 다 이런 내로남불, 양극화 정치에 눌려서 정치인으로서 제대로 된 신뢰를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 소통을 늘리고, 여야 지도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아직 대통령실 정무수석 얼굴도 못 봤다”며 “야당도 노력해야 하지만, 국정 운영에 책임을 진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참모들이 열심히 야당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최형두 의원은 “지난달 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대표단이 미국을 찾았다”며 “여야 지도부가 크건 작건 이런 식의 협치 사례를 계속 더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김종민 의원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정치 양극화 문제의 현황과 해법’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달에도 김진표 국회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집담회’가 열렸다. 여야 의원들은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합리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이상민(5선, 대전 유성을)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정당 창당 요건을 완화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다양한 정당이 다양한 목소리로 정치 품질 경쟁을 벌이면 정치 팬덤에 좌우되는 양당 정치가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며 “정치 팬덤을 없앨 수는 없으니 거기에 기대는 정치인들이 고립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재선, 전북 남원·임실·순창)은 “지금은 여야 구분 없이 국회의원 10명 이상 동의만 얻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서로 다른 교섭단체 의원을 의무적으로 10명 안에 포함하도록 하면 상대를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