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추가로 높이는 내용의 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이 14일 국회 논의를 시작했다. 법안을 제출한 정부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에 필요하다”고 했지만, 야당은 “대통령 한마디에 법을 또 고치라는 말이냐”고 반발해 결국 반도체특별법 합의에 실패했다. 미국, 대만 등 의회가 반도체 육성을 위해 입법을 주도하고 우리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은 법안 통과의 대가로 기업들이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도 따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와 조세소위원회를 잇달아 열고 반도체특볍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기본 공제율을 대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는 내용이다. 법이 통과되면 올해 한시적으로 4%인 신규 투자 추가 공제율을 10%로 늘리기 때문에 최대 25~35% 공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대기업 기준)로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시켰지만 “지나치게 소극적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고,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3일 공제 비율을 더 높인 개정안을 발표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날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은 “우리 수출의 19% , 투자의 18%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놓고 전 세계가 국가 대항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회도 어떤 도움과 해결책을 줄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며 법안 통과를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세액공제를 해주면 반도체 기업이 새로 투자하겠다는 협의가 있었느냐”고 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동의한다”는 야당 의원들도 비공개로 열린 조세소위에선 “기업에 대한 막대한 세금 지원을 어떻게 돌려받을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거나 “한전이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반도체 대기업은 싼 전기요금으로 매년 몇천억원의 이익을 보기 때문에 법인세를 제대로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날 조세소위는 야당 반대 속에 의결에 실패했다. 기재위 민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법안)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대규모 감세이기 때문에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과 달리 주요 반도체 경쟁국들은 정부와 의회가 협력해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대만 입법원(국회)은 지난달 7일 ‘대만 반도체법’으로 불리는 ‘산업 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업의 연구개발 비용 25%를 세액공제해주고, 첨단 설비 투자에 들어간 비용의 5%도 별도 공제해주는 법이다. 미국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서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기업 설비투자 비용의 25%를 세액공제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반도체 생산 시설 지원에 390억달러(약 49조5000억원), 연구개발·인력개발에 132억달러(약 16조7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해 2월 반도체지원법을 제안, 12월 초안을 유럽의회에 제출하는 등 지원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총 430억유로(약 58조7000억원)의 정부와 민간 자금을 투입하고, 규제도 대폭 간소화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지난해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7740억엔(약 7조5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편성했다.
반면 우리 국회에선 첨단 산업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에 반도체 전문가가 배제되는 일도 벌어졌다.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는 지난 7일 위원 선임을 마쳤는데,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산업강화법)’을 주도해온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특위 신청서를 냈음에도 특위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비교섭단체 몫으로 양 의원 대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을 택한 것이다. 민 의원은 법사위에 있던 양향자 의원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처리에 반대하자 ‘위장 탈당’ 꼼수로 야당의 검수완박 처리를 도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