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 수사가 이뤄진 것은 지난해 8월 이후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기 전에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의혹과 아내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에 대한 경찰 수사 등이 관련 수사의 전부였다. 이때 검찰의 움직임은 ‘정중동’에 가까웠다.
이 대표가 당대표가 된 즈음 윤석열 대통령은 오랜 기간 공석이었던 검찰총장 자리에 측근으로 알려진 이원석 검사를 앉혔다. 그 이후 검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 시기 윤석열 캠프에 몸담았던 A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이재명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대장동 관련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연내 기소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면 민주당은 반드시 두 쪽으로 쪼개진다”고 전망했다. 이 인사는 국민의힘 소속은 아니었지만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문에다 김건희 여사와 가깝고 인수위 당시 대통령실 비서관급 인사에도 관여했던 인물이었다. 권력 중심의 돌아가는 사정에 밝았다. A씨 전망이 여러 가지 ‘설(設)’ 중 하나였을 수 있지만, 당시 A씨의 위치, 말의 문맥 등을 고려해보면 권력 중심 인사들이 썼던 시나리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은 커 보였다. 이 대표 취임 후 반년이 지난 지금 이 시나리오는 큰 틀에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반드시 두 쪽으로 쪼개진다”
검찰은 우선적으로 이 대표 취임 나흘 만인 지난해 8월 30일, ‘백현동 개발 의혹’ 해명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고발된 이 대표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이후 검찰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 검찰은 성남FC에 후원금을 낸 기업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조사하며 진술을 받아냈고, 대장동 일당들의 진술도 이끌어냈다. 몇 개월간의 수사 끝에 검찰은 이 대표를 세 번에 걸쳐 소환조사하며 결국 지난 2월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애초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불구속 기소 정도로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검찰은 현직 야당 대표의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초강수를 뒀다. 구속이냐 불구속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검찰 수사는 이 대표 기소를 목표로 달려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시나리오. 권력 중심에서 그렸던 민주당의 ‘자중지란’ 시나리오 2막은 검찰의 영장 청구로 이제 막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대선 패배 후 묵언의 시간도 갖지 않은 채 총선 출마와 전당대회 출마를 했던 이재명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다음 대선을 기약하는 것이다. 야당 주류에서는 겉으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지만 윤석열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 기대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비주류의 반발에도 당내 주요 권한과 시스템을 친명계에 유리하게끔 바꿔왔다. 하지만 배임액만 4000억원 넘게 산정하며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 수사 결과는 이제 중도층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대표에게 대장동·위례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4000억원대 배임 혐의와 7000억원대 이해충돌방지법 및 구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성남FC 의혹 관련 혐의인 제3자 뇌물죄 액수도 130억원대로 산정했다. 이와 관련해 이원석 검찰총장은 “불법 정경유착을 통해 본래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에 돌아가야 할 천문학적 개발 이익을 부동산 개발업자와 브로커들이 나눠 가지도록 만든 지역 토착비리로서, 극히 중대한 사안으로 본다”고 밝혔다. 구속영장에 적시된 이 대표 관련 혐의의 무게가 총선에서 누구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명계, 공천에 ‘당원 평가’ 반영 방침
현재까지 민주당의 대체적인 상황은 이른바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분위기다. 현 상황에선 이재명 대표를 대신할 마땅한 인물이 없는 데다 여야 정치인을 향한 검찰 수사의 편파·공정성을 지적하는 지지층의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 시스템도 이른바 ‘친명계’에게 유리하게끔 굴러가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은 비명계 의원들이 주도해 만들어진 모임인 ‘민주당의길’ 참여 의원들이나 이 대표 검찰소환에 동행하지 않은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이 대표를 지원할 것을 거세게 촉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은 이른바 ‘좌표찍기’ ‘문자폭탄’ 등의 부적절한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의원들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최근 당 혁신위원회가 내년 총선 공천 컷오프 과정에 ‘당원 평가’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건,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이런 기세를 등에 업고 이른바 ‘쌍특검’(대장동·김건희 특검) 추진에 당장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이 ‘김건희 특검’을 두고선 신중론을 취하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민주당과 보조를 맞출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야당 한 관계자는 “특검 자체가 ‘이재명 방탄’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어 정의당이 당장 나서지 않는 것일 뿐이다.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의당은 특검 도입 유예 기한을 2월 말 정도로 두고 있다. 정의당 강성 지지층 사이에선 지금이라도 당장 민주당과 함께 김건희 특검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쌍특검’으로 검찰과 맞붙겠다
체포동의안 역시 부결 방향으로 흐르며 검찰과의 ‘강대강’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건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론으로 안 된다 하더라도 부결시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종결하는 것도 아니고 뭉개기만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이 대표가 그동안 검찰소환에 일일이 응했거니와 측근들이 모두 구속기소된 상황에서 증거 인멸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1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두고 “제가 어디 도망간다고 하나”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법리적으로도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이해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물론 (비명계 측에서) 체포동의안 관련해서도 알음알음 (가결) 분위기는 있는데 굉장히 조심스럽다”며 “예를 들어 체포동의안이 가결이 되어도 누가 가결에 투표했는지 뻔할 거고 부결이 됐다 해도 가결 표를 보면 대강 누군지 알 것이니까…. 마음은 굴뚝 같으나 (상황이) 그게 아니다”라며 말을 줄였다. 체포동의안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 찬성이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다 해도 민주당이 전체 의석 299석 중 169석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표의 출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던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도 이런 이유 등으로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된 바 있다.
그렇다고 이재명 리스크를 털고 가자는 분위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친문 의원들로 구성된 정책 연구 포럼 ‘사의재’가 창립된 데 이어 비슷한 의원 구성의 싱크탱크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선거제 토론회를 여는 등 본격 활동에 나선 것이 그 일례다. 무엇보다 앞서의 의원모임 ‘민주당의길’은 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 대표의 두 번째 검찰소환 다음 날인 지난 1월 31일 출범하면서 친이재명계 의원들로부터 “당 화합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의길은 지난해 대선·지방선거 이후 선거 패배 원인 분석과 다음 총선 전략 강구를 위해 만들어진 의원 모임인 ‘반성과 혁신’이 확대·개편된 조직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친이낙연계 싱크탱크인 ‘연대와 공정’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초청해 강연 행사를 갖기도 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친이낙연계 정치인과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는데, 당내에서는 친이낙연계가 다시 뭉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들이 아직 당을 반쪽 낼 만큼 강한 ‘소구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길은 지금도 매주 화요일마다 비공개로 토론회를 열고 있는데, 이 대표 사법리스크 등 국지적인 주제가 아닌 당 지지율이나 윤 정부 대응 등 좀 더 큰 틀의 정치 문제를 논하고 있다”며 “언론에서 ‘비명계 결사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그렇지 실상은 조금 다르다”라고 말했다.
들썩이는 비명계 움직임
민주당의길의 전신인 ‘반성과 혁신’이란 의원 모임이 그간의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내놓은 일부 자료집을 보면, 실제 당 현안보다는 원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어느 정도 오픈된 모임들로 (비명계와 친명계에) 반쯤 걸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이 대표 리스크 (대응)에 대한 비밀 이야기가 오가기는 어렵거니와 진짜 이야기는 알음알음 서로 간에 이뤄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가시적으로 공유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했다. 바꿔 말하면 각 모임들만 해도 지금으로선 당초 조직 의도나 배경과는 무관하게 지도부 방침에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윤핵관’과의 권력투쟁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지금 국민의힘이 내홍에 빠진 데엔 이 전 대표에 대한 혐의나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날려버린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의 혐의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에 나설 경우 나쁜 선례를 만들 여지가 있다. 비명계 쪽에서도 사법리스크 위험을 감정적으론 호소해도 논리적으론 미흡한 점이 많다고 볼 것”이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지난해 ‘대장동’ ‘김만배’ 등 이 대표 의혹과 관련한 단어를 금기어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나타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16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윤석열 독재 정권이 검찰권의 사유화를 선포한 날”이라며 “제가 한 일은 성남시장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법에 따라 지역을 개발하고 주민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 민간에게 넘어갈 과도한 개발이익의 일부를 성남시에 되돌려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쪼개기’ 영장 청구 등 변수 많아
하지만 여전히 주도권이 검찰에 있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의 진짜 고민이다. 현재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것이 아니다. 백현동·정자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사건, 경기도 대북송금 의혹 사건 등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 앞서의 대장동 의혹이나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관련 체포영장이 국회에서 부결된다 하더라도 검찰은 또 다른 혐의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의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도 여기서 물러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쪼개기 구속영장 청구’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과 만난 자리에서 “당에서 이 대표 방탄을 치면 치는 대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조응천 의원은 지난 2월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쪼개기 영장청구는 훨씬 더 심한 망신주기”라며 “이번에 영장 청구하는 거 말고 백현동 또 정자동 호텔 이건 어떻게 할 건가. 이건 또 따로 떼서 나중에 또 (영장청구)할 건가”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검찰이 두 번, 세 번 지속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든지 하다못해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을 시, 혹은 피고인 김만배씨가 진술을 번복할 경우 당의 상황은 언제든 뒤바뀔 것”이라며 “당내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 일각에선 ‘포스트 이재명 체제’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 인사가 거론되고도 있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이낙연계나 친문계 인사가 나오면 반발이 뻔할 거고 친명계 인사는 도루묵이 된다”며 “대안으로 원외 중립인사가 거론되고도 있는데 여기서 누군가 욕심을 부리면 그대로 또 당은 블랙홀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과연 이재명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