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당원과의 대화에서 최근 숨진 채 발견된 전형수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을 두고 “어쨌든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한 일이어서 제가 어떤 방식이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당내에서 ‘이 대표가 검찰 탓만 하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총선 공천 제도 TF’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TF 단장 이개호(오른쪽) 의원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공천 제도의 모든 판단 기준을 경쟁력에 둬야 한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이 대표는 이날 오후 당사 2층 ‘당원존’에서 2시간 가까이 당원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당원 200여 명이 모였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전씨의 극단적인 선택을 언급하며 “제가 만난 공직자 중에 가장 성실하고 청렴하고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의 표상 같은 분이었다”고 했다.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잠시 멈춘 이 대표에게 당원들이 “힘내세요”라고 하자, 이 대표는 “저만 잡으면 되지 주변을 잡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져서 정말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동안 이 대표 주변에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졌던 2021년 말부터 현재까지 5명이 극단 선택을 했는데, 이 대표는 그때마다 “모르는 사람이다” “검찰의 조작·압박 수사 때문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대표는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들이 체포 동의안 이탈표를 색출하며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을 표적으로 삼는 데 대해 “자해적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며 자제와 단합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비명계를 ‘저쪽’으로 지칭하면서 “저쪽이 공격하면 ‘분열 시작’ 이렇게 헤드라인이 잡히겠지만, 거기에 반격하면 다음 꼭지는 ‘갈등 격화, 곧 분당될 듯’ 이렇게 나간다”며 “문제가 악화되는 빌미만 된다”고 했다. 친명·비명 간 갈등이 분당 위기로 격화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정말로 길게 멀리 넓게 봐야 한다”며 “내년 총선 결과는 대한민국과 민주 진영 운명을 결정할 것이고, 개인 이재명 인생도 결정 날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고 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비명계 불만을 달래면서, 최근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대표직 사퇴 요구를 일축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지난달 27일 체포 동의안 표결 때 31표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한 데 대해 “평소에 충분히 얘기하고, 웃통 벗고, 멱살 잡고 싸울 수 있는 상황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방식으로 불신,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저의 부족함이 큰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탈표 색출에 대해 “우리끼리 싸움으로 자멸의 길로 갈 수 있다”며 “생각이 다르다고 색출해서 망신을 주고 공격하면 기분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당의 단합을 해친다. 집 안에 폭탄 던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강성 지지자들이 비명계를 비하하는 ‘수박’ 용어에 대해서도 “수박 이런 소리 안 했으면 좋겠다”며 “생각을 바꿔 해보라. (우리를 향해) ‘찢’ 어쩌고 하는 거 들었을 때 좋았느냐”고도 했다. ‘찢’은 이 대표와 그 지지자들을 비하할 때 사용된 용어다.

한편 비명계 의원 모임인 ‘민주당의 길’ 소속 의원 10여 명은 이날 체포 동의안 부결 이후 처음 세미나를 열었다. 체포 동의안 부결 이후 이 모임 소속 의원들은 ‘이탈표’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모임을 잇따라 취소했었다. ‘대선 1년, 대한민국과 민주당’을 주제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참석 의원들은 이 대표의 전 비서실장이 숨진 사건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본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무엇이든 당 혁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이 대표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