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흔들리고, 비명(비이재명)계는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 겹치면서 생긴 ‘당 리더십 공백’ 상태가 문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용진 의원 페이스북

비명계로 분류되는 박용진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에서 이틀 전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방문을 알리며 “대통령께서 ‘민주당이 조금 달라지고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또 화합하면 내년 총선은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격려했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문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는 ‘결단’이 이 대표의 사퇴를 포함한 거취 문제를 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박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결단의 구체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당 통합을 원하는 문 전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만 했다.

박 의원은 이날 올린 글에서 “(문 전 대통령이) 당내 좌표 찍기, 문자 폭탄, 증오와 혐오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보수·진보 진영 간 갈등이 나라를 분열시키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계셨다”고도 했다. 주로 친명 강성 지지자들이 비명계를 향해 퍼붓는 비난과 문자 폭탄 공격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우려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반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17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을 지난 10일 만났다면서 “대통령께서 ‘지금 현재 민주당이 총단합해서 잘 해야 된다. 지금 이재명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사퇴론을 제기하느냐)’, 그 정도 얘기하셨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중심의 민주당 단합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 거취를 의미하는 듯한 말을 했다는 전언과는 정반대다.

박 전 원장이 전한 문 전 대통령의 ‘이 대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언급에 민주당은 “진짜 그런 말을 한 것이냐”고 술렁였다. 비명계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상민 의원은 17일 오후 CBS 라디오에서 “문 전 대통령이 과도하게 말한 거고 전달한 분도 잘못 전달한 것”이라며 “우리가 뭐 문 전 대통령 꼬붕이냐, 지시하면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해야 될 말이 있고 안 해야 될 말이 있다”며 “대통령의 뜻이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마라 이런 식으로 들린다. 더 모욕적”이라고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 민주당 안팎에서 논란이 되는 데 대해 친문계는 ‘황당하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양산을 찾은 정치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절대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며 “확인해보니 이 대표의 거취에 대한 것이나 또는 ‘이재명 외에 대안은 없다’는 식의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친문 인사도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이 자기가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만 취사 선택해서 자기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라며 “결국 우리 당에 확실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자꾸 문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편 이재명 대표가 참여를 독려했던 18일의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에는 최근 건강 문제로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해찬 전 대표가 직접 참석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과거 ‘조폭 연루 의혹’ 등으로 이재명 대표가 탈당 압박을 받았을 때 “이재명은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 감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이 대표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애써 참석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