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조직국장 A씨가 핼러윈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 북한으로부터 ‘참사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분출시키는 활동을 하라’는 지령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 상자를 들고 나가고 있다./뉴스1

본지가 22일 입수한 A씨의 대북 보고문과 대남 지령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1월 15일 A씨에게 보낸 지령문에서 윤석열 정부 공격을 주문했다. 지령문은 사흘 전(11월 12일) 이뤄진 핼러윈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 집회를 언급하면서 “윤석열 퇴진 함성이 서울 시내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라며 “2014년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11월 12일 당시 서울 숭례문에서 전국 노동자 대회를 열었는데 이 집회 이후 촛불 집회에 합류했었다. 민주노총이 당시 촛불 집회 합류 일정을 공지한 포스터엔 “국가는 없었다. 대통령이 책임져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북한 지령문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정부 책임론을 최대로 부각시키면서 윤석열 패거리들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진단했다. 북은 이어 “이런 분위기를 전술적으로 잘 이용해 나간다면 집권 초기부터 극심한 통치 위기에 시달린 윤석열 역적패당에게 보다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며 “이번 특대형 참사를 계기로 사회 내부에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과 같은 정세 국면 조성에 중심을 두고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분출시키기 위한 조직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면 한다”고 지시했다. 민주노총은 한 달 뒤인 12월 6일 ‘전국 동시다발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 투쟁 대회’를 열었다.

국정원은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정동의 민주노총 본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 제주 세월호 제주기억관 평화쉼터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정보 당국은 당시 이뤄진 압수 수색 분석을 통해 민주노총 조직국장 A씨가 대북 지령을 여러 번 받고 대북 보고문도 여러 건 작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는 2020년 9월 29일 대북 보고문에서 “산별 모임에 사회연대포럼 민주당 세력과 통합노동연대 B씨 등 일부 중앙파(민주노총 내부 강경파)와 현장실천연대가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을 ‘지사장’으로 북한의 김정은을 ‘총회장님’으로 지칭하면서 “조만간 기쁜 소식을 총회장님께 보고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보고문에서 “지사장(A씨)의 판단은 선거도 중요하지만 철저히 총회장님이 제시하신 회사 활성화와 진보 정당 재편 방향에서 선거를 치를 계획”이라고 했다. A씨가 대북 보고문을 보낸 날은 민주노총이 위원장 공식 선거 일정을 공고한 직후였다. 민주노총은 당시 민주노총과 지역본부 임원 동시 선거를 치렀고 그해 12월 양경수 현 위원장 지도부가 당선됐다. 양 위원장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자 대학 동문이다. 당시 민노총 선거에는 총 4개팀이 출마했는데 A씨가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북에 보고한 중앙파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

A씨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 4월에는 북한에 남한의 정치 지형 및 정세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다. A씨는 2021년 4월 2일 자 대북 보고문에서 “촛불 운동으로 기존의 정치 행태에 철퇴를 가했지만 보수 양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변혁당, 녹색당은 사분오열되어 있다”고 했다. 또 “영업 1부는 이익 집단이자 귀족 노조라는 낙인으로 진보라는 가치조차 빼앗긴 형국”이라고 했다. 영업 1부는 민주노총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A씨가 대북 보고문을 보낸 날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에 따른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광역단체장 2명과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8명, 기초의원 9명을 뽑는 선거를 치르기 닷새 전이다. 당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 판세는 국민의힘 소속인 오세훈 시장과 박형준 시장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분위기였다.

A씨는 2021년 6월 27일 대북 보고문에서는 “현장 활동가 조직 확장과 관련한 조직 건설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대선 시기 모인 성원들의 면면이 현장 대중에게 민주당 경향성에 대한 오해로 비쳐질 수 있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보고문에 현장실천연대의 C씨와 D씨 실명을 적시하면서 이들로 인해 대선을 앞둔 조직 구성이 지연되고 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북한은 A씨에게 이태원 참사 이후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와 대선 등 국내 주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진보 세력의 영향력을 확대하라는 취지의 지령을 내렸다. 지난해 3월 대선 직후 북이 보낸 지령문에는 “(진보 운동 세력이) 각 지역에서 지지 세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적시되어 있다. 지령문은 당시 남한 정세에 대해 “현재 윤석열 패거리들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데 이어 민주당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80%의 지방 권력까지 빼앗아 보수 정치 실현에 유리한 정치 구도 구축 목적 아래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 분위기를 활용해 진보 운동 세력 확장 기회로 활용하라는 취지의 주문을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정은 시대 대남 공작의 당면 목표는 윤석열 정부의 정권 기반을 무력화하여 적화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집약된다”며 “지하당 구축 공작과 병행해 이른바 ‘진보 정당’ 구축 및 침투를 위해 진력해 왔는데 향후 국회의원 총선거 등 권력 재편기 등에 대응하여 정치 공작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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