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해 위헌 논란을 빚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까지 국가 체계와 근간을 흔드는 법률안을 계속 발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정부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안을 본 전문가들은 “헌법에 배치되고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위배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렇게 좋은 법안이라면 민주당이 여당이던 문재인 정권 때 왜 만들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월 민주당 설훈 의원은 우리나라가 해외 국가와 맺는 조약 문안을 해당 국가와 교섭 전에 예고하고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하며, 협상의 주요 진행 상황을 사전에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약 체결 절차 법안’을 발의했다. 설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체결된 조약을 예로 들며 “한·UAE 비밀군사협정,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 그간 국가 간 합의를 공론화 과정 없이 졸속으로 체결했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통화에서 “헌법 73조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한다’고 돼있고, 헌법 60조에서 중요 조약에 대해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도록 별도 통제 장치가 있다”며 “그런데 거기에 더해 하위 법률로 무슨 통제를 또 한다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역시 국정조사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남북 정상회담부터 조사하자”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지난 30일 김건희 여사를 특정해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은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특별사면의 경우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져 국민 법 감정에 배치된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헌법 79조는 ‘대통령은 사면할 수 있다’고만 하기 때문에 헌법에는 사실상 사면권에 제한이 없다”며 “이런 법적 쟁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통령 배우자를 겨냥한 법안을 만들면 국가 위신이 뭐가 되겠느냐. 그보다는 사면심사위원회 실질화가 합리적”이라고 했다.

민주당 최기상 의원이 지난달 27일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헌법과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했다. 해당 법안은 헌법상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도록 돼있는 것을, 대법원에 후보자추천위원회를 신설해 여기에서 대법원장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했다. 허영 교수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을 임명하면서 기관 간 통제를 위해 국회 동의를 얻는 것”이라며 “거기에 사법부가 본인들 수장 임명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지난 1월 대통령의 국가인권위원 지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국가인권위원 11명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에서 추천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진 의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위원회 조직 사항도 위원회 규칙으로 정해 조직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역시 대통령의 인권위원 지명권을 제한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 2월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최근 검찰이 증거 확보를 목적으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이메일, 메신저, 문자 등을 압수 수색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며 의뢰인과 주고받은 의사 교환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물건은 변호사가 검찰의 압수 수색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검찰 수사상 필요에 따라 법원이 발부한 압수 수색 영장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각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된 민주당 기동민, 황운하 의원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이 발의에 동참했다.

한 법조인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헌법상 국민 기본권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로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문재인 정권 적폐 청산 수사 때는 이러한 법안을 왜 발의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실제 문 정권 적폐 청산 수사 당시 검찰의 변호인 압수 수색이 반복되면서 서초동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압수 수색 당할까 봐 적폐 사건은 변호를 못 맡겠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작년 11월 “현재 대법관은 대부분 서울대 법대, 법관 출신 50대 남성”이라며 전체 대법관의 3분의 1 이상을 판사와 검사가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감사원이 중요 감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감사원을 집중 견제하는 법안들을 여러 차례 발의했다. 지난 1월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정숙 의원은 감사원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고, 지난해 12월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감사원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법안을 냈다. 작년 9월 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비공개 감사위 의결 사항이더라도 국회 상임위에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권 감사를 막기 위한 ‘감사완박’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 개정을 강행 처리했고,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법 역시 지난해 거대 의석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헌법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며 입법 폭주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얘기를 한마디도 안 하다가 왜 지금 시점에서만 이런 법안을 발의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