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2021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윤관석 의원과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당시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대표가 선출된 직후 당 핵심 요직에 잇따라 임명됐다. 특히 원외 인사였던 이 전 사무부총장 임명 때는 당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송 전 대표가 임명을 밀어붙였다고 민주당 인사들은 전했다. 민주당에서는 17일 “전당대회 때 공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 아니겠느냐. 지금 나오는 정황을 보면 그 공이 ‘돈 봉투’였던 모양”이라는 말이 나왔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5월 2일 전당대회를 보름여 앞두고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송 전 대표로서는 2016년과 2018년에 이은 세 번째 당권 도전이었다. 한 재선 의원은 “당시 송영길 캠프의 절박함은 다른 캠프와는 비교가 안 됐다”고 했다. 당권 경쟁은 송 전 대표와 홍영표, 우원식 의원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송 전 대표가 5선(選)으로 4선인 홍·우 의원에게 앞섰지만 당내 주류였던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지원을 받은 홍 의원, 민평련과 더미래에 속했던 우 의원에 비해 당내 기반은 오히려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돈 봉투’가 등장했다.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된 이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폰 통화 녹음에 따르면, 전당대회를 일주일 앞둔 4월 25일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은 이 전 사무부총장에게 “(윤)관석이 형이 꼭 돈을 달라고 하면 돈 1000만원 주고”라고 말한다. 이틀 뒤엔 “저녁 먹을 때쯤 (윤 의원에게서) 전화 올 거예요. 그러면 10개 주세요”라고 한다. 같은 날 이 전 사무부총장은 윤 의원과 통화에서 “어디세요? 제가 잠깐 봬야 돼서”라고 묻고, 강래구씨에게는 “윤관석 오늘 만나서 (돈) 그거 줬고, 그 이렇게 봉투 10개로 만들었더만”이라고 말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송영길 캠프에서 원외는 강래구, 원내는 윤 의원이 조직을 맡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의원이 돈 봉투를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4월 27일과 28일이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28일 윤 의원과 통화에서 “오빠, 호남은 해야 돼”라고 말한다. 윤 의원은 “○○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보더니 또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또 그래 가지고 거기서 세 개 뺏겼어”라고 한다. 애초 돈 봉투를 주려던 인사 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다.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권리당원 투표와 당원·국민 여론조사 합산 결과 득표율 35.60%로 당선됐다. 2위를 한 홍 의원의 득표율 35.01%와는 불과 0.59%포인트 차이였다. 송 전 대표는 권리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에게 뒤졌지만, 가장 큰 비중(45%)을 차지하는 대의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 중진 의원은 “돈 봉투가 없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누가 알겠나”라고 말했다.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 이틀 뒤, 당의 자금과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윤 의원을 임명했다. 한 달여 뒤엔 이 전 사무부총장을 미래 사무부총장에 임명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 임명 때는 당내 반발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가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이 전 사무부총장 인사를 하려 한다며 반대 목소리가 나왔는데, 송 전 대표가 “당대표 권한”을 앞세워 임명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인사는 “지금 민주당에 떠도는 ‘돈 봉투 리스트’를 보면 당시 송 전 대표가 당내 요직에 기용한 현역 의원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대선 주자 가운데 이재명 경기지사와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 전 대표는 ‘무(無)계파’를 자처하며 당내 주류였던 친문 세력과 대립 양상을 보였는데, 이 지사 역시 친문과는 소원한 관계였다. 전당대회 이후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는 송 전 대표가 이 지사를 지원한다는 의미의 ‘이심송심(李心宋心)’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비명계에서는 “송영길이 경선 관리를 편파적으로 한다”는 비판을 제기했었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3월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며 공석이 된 지역구(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엔 이재명 대표가 전략공천을 받았다.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에 낙선했지만, 이 전 대표는 당선됐고 이후 작년 8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의도했든 안 했든 지금의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송 전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며 “이 대표로서도 이번 돈 봉투 사건을 ‘남의 일’로 치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