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의 이준우 보좌관. 국회 의원회관 322호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간이 침대가 지난 4년간 그의 침실이었다. /박국희 기자
2023년 4월 18일 황보승희 의원실의 이준우 보좌관이 국회 의원회관 내 그가 숙식하는 거처를 공개했다.

톰 행크스 주연의 2004년작 영화 ‘터미널’은 공항에서 먹고 자는 난민의 이야기다. ‘국회판 터미널’도 있다. 국회에서 만 4년째 먹고 자는 남자의 이야기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의 이준우 보좌관(49)이 그렇다.

올해로 20년차 보좌관인 그는 2019년 6월부터 지금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의 헬스장에 딸린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의원실(322호) 사무실 한켠에 펴놓은 간이 침대에서 자는 생활을 4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는 “눈 뜨면 사무실이고 눈 감으면 집”이라고 했다. 가족이 있는 부산 집에는 주말에만 갔다오는 생활을 4년째 하다보니 6살 딸이 “아빠는 원래 주말에만 보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이 보좌관의 ‘국회판 터미널’ 생활은 2018년 4월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 결심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보좌관은 “서울 집을 정리하고 부산에 집을 얻어 선거 운동에 들어갔는데 당협위원장이 당초 얘기한 공천 약속이 번복됐다”며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5% 득표도 얻지 못했다. 선거비용 2억여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고 했다. 선거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때까지 15년간 보좌관 생활을 하며 부었던 공무원 연금을 일시불로 깨서 받고 대출까지 얻은 터였다.

보좌관 월급만으로 빚을 갚고 깼던 공무원 연금을 몇 달치씩 재납입하면서 서울에 단칸방 구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의원회관 숙식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하필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의원회관 샤워실이 폐쇄됐다. 여의도 인근 사설 헬스장에서 샤워만 하다 이마저도 폐쇄됐다. 이 보좌관은 “그때부터는 주변 도움을 받아 지방 기업 서울 출장소 직원들이 홀로 사는 사택을 전전하며 씻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먹고 자던 이 시기 그는 오히려 업무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일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보좌관은 지금도 날짜를 또렷이 기억한다. 2019년 8월 19일, 한국일보 1면의 특종 기사. 조국씨 딸 조민씨가 부산대 의전원에서 두번이나 유급을 하고도 6번 연속 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 기사가 그의 작품이었다. ‘조국 사태’의 시발을 알린 기사였다.

이 보좌관은 “그 기사가 나간 당일 새벽 5시부터 밀려드는 타 언론사 기자들의 확인 전화를 의원회관에서 자다 깨서 받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후 30여건의 조국 의혹 단독 기사들을 낸 것 같다”며 “당시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조국 수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하도 시달리자 ‘나를 찾지 말고 그 보좌관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는 말을 법조 기자들에게 듣기도 했다”고 했다.

2020년 태국 교민의 제보를 받고 현지 출장을 가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 자녀가 고액의 학비가 드는 방콕 최고의 국제 명문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냈다. 이 보좌관은 “회관 사무실에서만 자다 그때 처음 방콕 호텔방에서 자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18일 이준우 보좌관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다. 간이 침대가 있는 사무실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곧바로 일터다. 책장 뒤편에 평소 챙겨먹는 영양제가 가득했다. /박국희 기자

작년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 공정방송감시단 부단장, 올초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캠프 방송토론팀장으로 활동한 그는 “대부분 오너나 개인을 위해 일하는 직업과 달리 국민 실생활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의회 일이 너무 재미있고 천직 같다”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실 근무 당시 조수석 뒤에 유아용 카시트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법안 발의가 그의 첫 작품이다. 미국에서 동생이 출산을 했는데 차 뒷자리에 유아용 카시트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병원에서 아기를 건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9~21대 국회까지 근무하는 의원실은 바뀌어도 빠지지 않고 보좌 의원을 통해 꼬박꼬박 발의하고 있는 법안이 있는데 서울에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부울경 원전 밀집 지역으로 내려보내는 법안이다. 보좌관 초창기 시절 담당했던 상임위의 피감기관이 원안위였다고 한다. 이 보좌관은 “당시 세종시 공무원의 이직 신청 1위 기관이 원안위였는데 이유는 원안위가 목 좋은 서울 광화문에 있기 때문”이라며 “원안위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원안위가 원전 밀집 지역 인근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원전 10기가 모여 있는 부울경 지역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입니다. 반경 30km 이내 거주 인구만 380만명이에요. 원전 안전을 책임진다는 원안위가 본인들 회의하기 편하다고 425km 떨어져 있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 보좌관은 “빚을 다 갚으면 ‘국회판 터미널’ 생활을 청산할 거냐”는 질문에 “국회에서 먹고 자는 생활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 져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