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의원

돈 봉투 살포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전 대표에게 0.59%포인트 차로 당대표 자리를 내준 홍영표 의원이 20일 “참담하다. 당사자(송 전 대표)의 신속하고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지금까지 발언을 자제했지만, 당과 당사자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송 전 대표는 논란이 커지자 당 지도부에 조기 귀국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의원은 송 전 대표를 향해 “국민과 당원께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시대착오적인,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단절하기 위해 당사자의 신속하고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내서도 송 전 대표 책임론이 커지고 있지만,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송 전 대표는 오는 22일 현지 기자회견을 열겠다며 돈 봉투 의혹에 관한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내 원성이 커지면서 결국 당 지도부에 조기 귀국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홍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당은 온정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지난 대선부터 지방선거에 이어 오늘까지 제대로 혁신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송 전 대표와 지도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강병원 의원은 의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왜 당대표 사과가 (파문이 터진 뒤) 5일 만에 나왔느냐가 가장 큰 포인트”라며 “우리 당이 그만큼 도덕적 감수성이 너무 둔감해져 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송영길의 정치 생명은 (한국에) 들어와도 끝이고, 안 들어와도 끝이라고 본다”고도 했다. 이원욱 의원은 “송 전 대표는 당대표를 했고, 386의 대표 정치인이라 도덕적 책임이 당연히 앞선다”고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의총 후 브리핑에서 “송 전 대표가 즉각 귀국해 실체를 낱낱이,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당 일각에선 정작 당 주류인 ‘86 그룹’이 돈 봉투 사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가 송 전 대표 조기 귀국을 요청하는 성명을 내자, 중진 선배 의원이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며 “(선배 의원들이 활동했던) 당시엔 어땠을지 몰라도 최소한 그들의 인식이 지금 현실과 맞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공공연하게 벌어진 일이었는데, 운 나쁘게 걸렸다는 인식이 큰 것 같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86세대가 자리를 내놓는 게 당이 살길”이라고 했다.

86 그룹 맏형 격인 우상호 의원은 지난 13일 KBS 라디오에서 “(여권이) 도·감청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로 (이번 사안을) 급하게 꺼내 든 것 같다”며 “국면 전환용 수사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86 그룹 중진인 이인영·김태년·윤호중 의원 등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 출신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에 “송 전 대표의 돈 봉투 사건은 86 운동권 출신 정치 세력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철저하게 파산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중병에 걸린 민주당을 지금 바로 정치적 수술대에 눕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용두사미’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크다. 86 용퇴론은 민주당에서 선거철마다 ‘쇄신책’으로 나오는 단골 소재지만, 당 주류에 포진한 86 그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선 송 전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86 용퇴론’이 공론화됐지만, 용퇴 의사를 밝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송 전 대표는 되레 86세대 우상호 의원을 선대위 총괄본부장으로 임명했고, 자신은 대선 패배 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선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86 용퇴론’을 주장했지만 무위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