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 2700억원대 전세 사기 피의자 남모(61)씨가 강원도 동해 망상지구의 7000억원대 개발 사업자로 선정되기 전에, 인천경제자유구역청(경제청)의 투자 담당 공무원들이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으로 먼저 옮겨가 망상지구 개발사업을 총괄했던 것으로 21일 나타났다. 국민의힘에서는 인천의 투자유치 전문가들이 강원도로 가서 망상지구 개발사업을 맡게 된 뒤, 역시 인천에서 활동하던 남씨가 돌연 강원도로 활동 무대를 옮겨 도시개발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 인천 지역 유력 야권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남씨를 둘러싼 정치권 개입 의혹의 핵심은 남씨가 어떻게 강원도 동해의 7000억원대 도시개발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남씨는 전세 사기 건과는 별개로 2018년 민주당 소속 최문순 강원지사 시절 동해 망상1지구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건설사의 매출과 시공 능력 등을 조작해 제출한 혐의로 작년 11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현 강원지사는 당시 남씨가 조작 의혹이 있는 서류를 제출하고도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과정에 대해 긴급 감사를 지시했다.
망상지구를 국제관광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사업은 2011년 취임한 최문순 강원지사의 선거 공약이었다. 최문순 지사는 2013년 동자청을 설립하고 캐나다의 한 투자 회사를 시행사로 선정했지만 2016년 말 해당 회사가 개발을 포기하면서 사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당시 강원도청 안팎은 “최문순 지사의 공약 사업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기류였다고 한다.
인천경제청에서 도시 개발 투자를 담당했던 A, B씨가 동자청으로 옮겨간 것도 이 시점이다. 송영길 인천시장 시절 인천경제청에서 계약직 공무원 신분으로 도시개발 투자유치를 담당했던 A, B씨는 각각 2016년 7~8월 동자청에 채용됐다. A씨는 망상지구 사업을 총괄하는 망상사업부장이 됐고, B씨는 투자유치본부장을 맡았다. 한 관계자는 “기존 산자부나 도청 공무원(‘늘공’)들로 구성됐던 동자청에서 망상지구 사업이 좌초되자 돌파구를 찾아야 했는데, 그냥 공무원으로는 안 되겠고 당시 인천 쪽에서 잘하던 사람들(‘어공’)을 데리고 왔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인천에서 전세 보증금을 빼돌리던 피의자 남씨가 동해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도 A, B씨가 망상지구 개발사업 총괄이 된 지 얼마 뒤였다. 남씨는 2017년 ‘동해이씨티’라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고 2018년 망상1지구 개발사업자로 선정됐다. 공모 절차는 없었다. A, B씨는 개발사업자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였다. 도의회와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는 2020년부터 남씨의 자금력 및 사업 실행 능력을 둘러싼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그때마다 망상사업부장이던 A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로 남씨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남씨를 두둔했다. 한 관계자는 “사업이 좌초돼도 기존 자리로 돌아가면 되는 ‘늘공’과 달리 계약직 ‘어공’이었던 A씨 등은 어떻게든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추진 의지가 컸다”고 했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남씨의 전세 사기 행각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사업자 선정 서류 조작 혐의로 남씨가 기소되면서 망상1지구 개발 사업은 전면 중지된 상태다. 남씨와 함께 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 관련 참고인 신분 수사를 받던 A씨는 작년 말 사표를 냈고, B씨는 투병 중 사망했다. 동자청 관계자는 “우리도 남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