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8일 신임 원내대표에 3선 박광온(66·경기 수원 정) 의원을 선출했다. 친(親)이낙연계인 박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친이재명계 일색 민주당 지도부에 일단 균열이 생겼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비명계와 무당파 성향 의원들이 박 원내대표를 세움으로써 친명계 독주에 본격 견제에 나선 측면도 크다. 돈 봉투 사태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향후 당 노선과 공천권 등을 놓고 본격적인 계파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외연 확장에 나설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 원내대표는 재석 의원 169명 중 과반을 득표했다. 박 원내대표가 비명계인 데다, 경쟁자인 친명 성향의 홍익표·김두관·박범계 의원에게 당 주류 표가 분산되면 결선 투표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결선 투표 없이 1차에서 바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득표 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함께 이기는 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는 “담대한 변화와 견고한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쇄신하겠다는 의원님들의 강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앞서 후보 정견 발표에선 “당의 포용성을 높이고 확장성을 넓혀 균형을 잡겠다”고 했다. 선거 기간 각종 인터뷰에서 “우리 지지자만으로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 소통 부재, 극단적 팬덤이라는 이재명 체제 약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 상당수는 돈 봉투 등 위기 상황에 대응할 적임자로 박 원내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당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며 “만약 이 대표 궐위 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세 후보보다는 박 원내대표가 가장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비명계 결집 역시 박 원내대표 당선의 큰 요인이다. 당초 비명 성향의 전해철·이원욱 의원도 원내대표 출마를 고려했으나 접었다. 이를 통해 박 원내대표가 선거 초반부터 표를 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명계는 전략 속에 단결했고 친명계는 분열했다.
박 원내대표의 성품도 당선 요인으로 꼽힌다. 한 의원은 “현역 의원들은 계파적인 고려보다도 박 원내대표의 친화력과 인간적인 매력을 높이 샀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낙연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하기 전에는 2015년 문재인 대표 비서실장, 2017년 문재인 캠프 공보단장으로 활동, 범친문계로 분류됐다. 친문·친낙계는 물론 친명계와도 두루 교분이 두텁다. 특히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홍근 의원에게 패배한 이후 1년 동안 현역 의원들을 계파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15년 넘게 교분을 쌓는 등 여권 인사들과도 깊게 소통한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특히 일부 의원의 막말이나 상식 이하의 언행에 대해선 현행 지도부처럼 방치하거나 조장하지 않고 박 원내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다수의 야당 관계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당장 민주당의 정책 기조나 노선이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스타일은 유연하지만 정책에선 강경한 편이다. 그는 당선 인사에서 “윤석열 정부 정책에는 사람이 없다”며 “국정 운영 기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 독선·독단·독주의 국정 운영을 폐기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50억 클럽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겸허하게 수용하기 바란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입법을 주도했다. 당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는 당의 중점 과제는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당분간은 ‘입법 독주’라는 비판에도 강경 대여 투쟁을 지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원내대표 선거 기간 이른바 ‘개딸’이라고 불리는 강경 지지층은 박 원내대표를 ‘수박(민주당 내 보수 인사)’이라며 비난해왔다.
실제 박 원내대표가 당선된 이날도 일부 지지층은 “최악의 결과”라며 “이 대표 발목을 잡을 것” 등 반발했다. 일부 조사에서 박 원내대표 지지가 저조했음을 거론하며 “의원들이 당원들 생각과 다르게 가고 있다”는 당원도 있었다. 극성 지지층은 “저런 의원들을 물갈이하려면 공천 과정에 당원도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공천 개혁만이 살 길”이라고 하기도 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당내 공천 갈등은 이낙연 전 대표 귀국과 맞물려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대한민국 생존전략’을 출간하며 오는 6월로 예정된 당 복귀 일정에 시동을 걸었다. 한 비명계 의원은 “‘개딸’을 앞세워 공천 룰을 비주류에 불리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표와도 가까운 박 원내대표가 친명계 위주의 공천을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