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해 “모든 검사가 총동원된 정치적 기획 수사”라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지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2일 송영길(탈당) 전 대표가 돈 봉투 사태 조사를 받겠다며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가 사실상 쫓겨나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당직자는 “전직 대표가 검찰과 소환 일정도 협의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닥치는 모습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정당에는 치욕적인 돈 봉투 의혹의 당사자가 마치 80년대 시국 사범이 경찰에 출두하는 것처럼, 정치 탄압의 희생양 같은 모습을 보이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당 안팎에선 “송 전 대표의 쇼가 지나치다” “황당하다” 같은 목소리도 나왔다. 송 전 대표 측은 전날 검찰과 연락했지만 ‘조사 불가’ 입장을 전달받았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출두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엔 “요즘 검찰은 옛날과 다르다” “차 한 잔도 대접 못 받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며 출두를 만류한 참모도 있었다. 송 전 대표 측은 ‘일단 가면 부장 검사라도 만나주지 않겠느냐’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출두를 했지만 결과는 문전 박대였다.

당 관계자는 “송 전 대표에겐 검찰이 만나주지 않아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출두가 무산되자 검찰청사 앞에서 A4 용지 6장 분량 입장문을 꺼내 들었다. 검찰 조사가 아닌 기자 회견을 준비해온 듯했다. 그는 입장문 대부분을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데 할애했다. 취재진 앞에서 가슴을 치면서 “제가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2개 받은 유일한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며 “연구실 배정받고 강의하는 사람을 검찰이 사실상 소환한 것 아니냐”고 했다. “모든 검사가 총동원된 정치적 기획 수사”라고도 했다.

송 전 대표의 기습 출두는 검찰 조사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의로움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나는 떳떳하다’라는 인식을 대중의 뇌리에 선제적으로 각인시키고, 한편으로는 돈 봉투 사태 ‘김 빼기’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이런 식의 ‘퍼포먼스’를 했다. 그는 당시 여야 대립으로 인사청문회 일정이 잡히지 않자 국회를 전격 방문, 기자회견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청문회 지연 책임을 정치권에 돌리려는 ‘쇼’라는 비판이 나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비장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젊은 야당 당직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주부 정모(45)씨는 “누가 보면 돈 봉투 사태의 당사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인 줄 알겠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송 전 대표의 이날 회견은 86 운동권 특유의 소영웅주의가 느껴지는 회고적 원맨쇼였다”고 했다.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와 관련해 검찰에 자진 출두, “내 목을 치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은 “검찰 겁박 쇼, 정치적 퍼포먼스로 법을 희화화하고 법질서를 교란한다”고 했다. 이날 송 전 대표의 자진 출두에 민주당 지도부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라며 “송 전 대표가 지금 할 일은 위장 탈당 쇼, 꼼수 출두 쇼가 아니라 돈 봉투 의원들과 함께 진상을 밝히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