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8일 확정한 22대 총선 ‘공천 룰(후보자 선출 특별당규)’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룰대로라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2심이 진행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뇌물과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총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다.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9일 “이 대표 셀프 구제 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일 오후 경북 구미시 호텔금오산에서 열린 찾아가는 국민보고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5.9/연합뉴스

민주당이 4년 전 만들었던 21대 총선 공천 룰은 “뇌물, 성범죄 등 형사범 중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상급심) 재판을 계속 받고 있는 자와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공개한 이번 22대 총선 공천 룰에서는 이 내용이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자에 대한 부분이 통째로 삭제된 것이다.

민주당은 대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부적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되면, 1심이나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항소하거나 상고해 상급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엔 형이 미확정된 상태라 부적격 심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도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받는 후보자라도 당 검증위와 최고위 의결 등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아 부적격 심사를 빠져나갈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관련 조항 자체를 삭제해 논란조차 나오지 않게 한 것이다.

이 대표의 재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선거법 재판은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바뀐 룰이 적용되면 1심에서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항소하면 부적격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조국 전 장관도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해 2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부적격 심사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해당 조항 내용의 삭제는 이 대표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예외 없이 부적격 처리하는 사유를 늘려서 오히려 전체적인 도덕성 요구 기준은 높아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비명계에서는 “공천 룰에 관련 조항을 손 본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정말 삭제해버릴 줄은 몰랐다” “한 방 먹은 느낌”이라는 말이 나왔다. 비명계의 한 인사는 “삭제된 조항은 1심 유죄 판결만 받았더라도 부적격 심사에 부치도록 해 총선 후보자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의미가 있었다”며 “굳이 삭제한 것을 보면 이 대표가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생길 시비를 원천 봉쇄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도 “친명계가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를 무력화한 데 이어 공천 룰까지 입맛에 맞게 세팅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