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8일 확정한 22대 총선 ‘공천 룰(후보자 선출 특별당규)’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룰대로라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2심이 진행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뇌물과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총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다.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9일 “이 대표 셀프 구제 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이 4년 전 만들었던 21대 총선 공천 룰은 “뇌물, 성범죄 등 형사범 중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상급심) 재판을 계속 받고 있는 자와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이 공개한 이번 22대 총선 공천 룰에서는 이 내용이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자에 대한 부분이 통째로 삭제된 것이다.
민주당은 대신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부적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되면, 1심이나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항소하거나 상고해 상급심 재판이 진행되는 중엔 형이 미확정된 상태라 부적격 심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도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받는 후보자라도 당 검증위와 최고위 의결 등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아 부적격 심사를 빠져나갈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관련 조항 자체를 삭제해 논란조차 나오지 않게 한 것이다.
이 대표의 재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선거법 재판은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바뀐 룰이 적용되면 1심에서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항소하면 부적격 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조국 전 장관도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해 2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부적격 심사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해당 조항 내용의 삭제는 이 대표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예외 없이 부적격 처리하는 사유를 늘려서 오히려 전체적인 도덕성 요구 기준은 높아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비명계에서는 “공천 룰에 관련 조항을 손 본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정말 삭제해버릴 줄은 몰랐다” “한 방 먹은 느낌”이라는 말이 나왔다. 비명계의 한 인사는 “삭제된 조항은 1심 유죄 판결만 받았더라도 부적격 심사에 부치도록 해 총선 후보자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의미가 있었다”며 “굳이 삭제한 것을 보면 이 대표가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생길 시비를 원천 봉쇄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도 “친명계가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를 무력화한 데 이어 공천 룰까지 입맛에 맞게 세팅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