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코인 투기 의혹으로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14일 탈당했다. 결백을 주장하던 김 의원이 민주당 진상 조사와 긴급 윤리 감찰이 본격화하기 직전 탈당하자, 코인 거래 내역 공개와 당 징계를 동시에 피하려는 ‘꼼수 탈당’ ‘방탄 탈당’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 차원의 조사·감찰은 사실상 종결 절차를 밟게 됐다. 민주당 안에서도 “당 지도부와 김 의원이 짜고 다 뭉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잠시’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쓰며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원 동지 여러분께 너무나 송구하다”고 했다. 국민을 향한 사과 메시지는 없었다. 김 의원은 “앞으로 무소속 의원으로 부당한 정치 공세에 끝까지 맞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코인 거래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15분 탈당계를 제출했다.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진상 조사와 징계 절차를 마치기 전까지는 김 의원의 탈당을 수락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탈당은 자유의사이고 어떤 경우에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의 탈당은 이날 오후 원래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때문에 열기로 했던 이른바 ‘쇄신 의총’을 2시간여 남기고 이뤄졌다. 민주당 안에서도 “쇄신 의총을 앞두고 나온 최악의 반(反)쇄신 행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는 의총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진 토론에서는 당의 사건 초기 미온적 대처와 ‘늑장 대응’을 두고 당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됐고 이 대표 사퇴 요구도 나왔다. 민주당은 6시간의 의총 뒤 “탈당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엄정한 조사 후 징계하는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김 의원이 탈당한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 의원의 탈당은 지난 5일 ‘60억 코인’ 보도가 나온 지 9일 만이다. 그는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의혹 제기에 “황당무계 그 자체”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국회 회의 중에도 코인 거래를 한 정황이 나오고, 마케팅 목적으로 뿌리는 ‘공짜 코인’까지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돌연 탈당했다. 친명계의 한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 당에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즉생(死則生)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친명계 안에서는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 의원이 추후 복당까지 염두에 두고 당헌·당규상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으려고 서둘러 탈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 당헌·당규는 징계 절차가 개시된 이후 탈당할 경우 탈당원 명부에 ‘징계를 회피할 목적으로 탈당한 자’로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이 징계 절차가 시작된 뒤 탈당한 것이냐는 물음에,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당헌·당규 해석에) 여러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의 자체 진상 조사 지시, 긴급 윤리 감찰 지시를 징계 절차 시작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조인 출신의 민주당 인사는 통화에서 “국민적 의혹에 대해 당대표가 직권 조사 지시를 내렸는데 이게 징계 절차 시작이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후 4시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김 의원 코인 사태에 침묵하던 이 대표는 “사과드린다” “죄송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우리 국민께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향후 이런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심려하지 않도록 충실히 대안을 마련하고 노력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모두 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는 늑장·뒷북 대응을 질타하는 발언이 이 대표 면전에서 쏟아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박용진 의원은 “김 의원 탈당으로 (당이) 손 놔버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우린 다 끝”이라며 “(당 지도부가) 자세를 고치라고, 무책임한 탈당에 우리 구성원 다 분노하고 있으니 조사도 계속하고 국회 윤리위에도 제소하고, 즉각 처리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설훈 의원은 “당을 쇄신하기 위해서, 당이 이런 정도의 처지에 몰렸으면 당대표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상식”이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따로 답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의원은 조사에 필요한 핵심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의총 브리핑에서 “진상 조사단이 김 의원에게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용 거래소, 전자 지갑, 거래 코인 종목, 수입 등 현황 관련해서 요청 자료를 제출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모든 자료가 제출 안 된 상태에서 탈당해 조사 경과 발표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당 권고에 따라 실제 코인을 매각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약 6시간여 동안의 의총 뒤 내놓은 결의문에서 “개별 의원의 탈당으로 당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며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 엄정한 조사후 징계하는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의 개인 동의를 얻어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도 “탈당시켜 놓고 무슨 엄정한 조사야” “다 덮어놓고 쇼 한다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결의문에서 윤리규범을 엄격히 적용하고, 윤리기구를 강화하고, 국회의원 재산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당 안팎에선 김 의원의 이번 ‘반성 없는 탈당’이 결국 이 대표와 당 지도부의 비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현재 당이 처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있다”며 “이 대표가 본인 문제 때문에 다른 사안에서도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도 “이 대표가 김남국 의원이 측근이라고 감싸고 도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게 국민 눈에 어떻게 보였겠느냐”며 “제1당이라는 공당이 개인적 인연과 친분에 의해 굴러가는 것처럼 비쳤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 대표의 중앙대 후배로, 이 대표가 당내 비주류였을 때부터 이 대표와 가까운 의원 모임인 ‘7인회’ 소속이었다. 평소에도 수시로 연락하며 당내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의원을 감싸는 목소리도 계속됐다. 양이원영 의원은 의총에서 “김남국 의원에게 과도한 비난이 가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 친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를 포함해 지도부에선 김 의원에게 법적 문제는 없지만 초반 대응을 너무 잘못해 여론이 나빠진 것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며 “법적 소명이 끝나면 김 의원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김남국 의원을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한다”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수박들도 탈당시켜야 한다” 등의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손혜원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김남국 의원 생각하면 너무 분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그러나 우리 지지자들이 그를 다시 세울 수 있다. 우리가 힘을 모아 다음 스텝을 준비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