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 회의. 더불어민주당은 대학생 학자금 대출의 이자 면제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가운데 단독으로 처리했다. 역시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했다는 속보가 뜬 지 10분도 채 안 지난 시점이었다. 국민의힘은 “국민 혈세를 쏟아붓는 포퓰리즘 법이자, 고졸 이하 청년은 혜택 못 받는 역차별법”이라고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수적 우위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대통령실 앞에서 항의하는 野 -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민주당은 앞으로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방송법과 노란봉투법, 이날 처리한 이른바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까지 줄줄이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방송법은 공영방송 이사진을 편향되게 구성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고,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지만 민주당은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게 만드는 게 민주당 전략”이라는 말이 나온다. 법안에 ‘민생’이라는 이름을 덧붙인 뒤,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민생을 외면하는 모양새를 내년 총선 때까지 끊임없이 연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법안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사실상 거대 야당의 ‘거부권 유도 정치’인 셈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쓰면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즉각 “윤 대통령은 기어이 국민과 맞서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간호법 제정이 윤 대통령의 공약이라 주장하며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주권자를 무시하는 약속 파기 정치”라고 했다.

민주당이 이날 처리한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은 취업 전 발생한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해 주는 내용이다. 매년 865억원 정도가 추가로 들 것으로 예측된다.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법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재정 문제 등으로 통과되지 않았다. 아무런 혜택이 없는 고졸 이하 청년에 대한 역차별이란 비판도 많다.

최근 민주당이 하는 일련의 법안 처리에는 이재명 대표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민주당 인사들은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지난달 페이스북에서 대학생 학자금 이자 면제법에 대해 “국힘과 윤 정부는 양심이 있나. 수십조원 초부자 감세는 되고 대학생 이자 감면은 안 된다고요?”라며 “일방 처리해서라도 꼭 관철하겠다”고 했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 본인의 ‘사법 리스크’에 더해 돈 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까지 당대표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이 대표가 ‘민생 주도 정당’을 강조해 위기를 타개해나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돈 봉투나 코인 사태에 쏠린 국민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략적 의도’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간호법 중재안을 마련하려 했지만 민주당이 한 글자도 못 고친다고 완강하게 거부했다”며 “세상에 한 글자도 못 고치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