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은 21일 경찰이 불법 행위를 하는 시위대를 규정과 절차에 따라 통제할 경우, 경찰이 직권남용 등으로 형사 처벌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방안을 마련하자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위 진압 경찰에 오히려 책임을 묻는 상황이 잇따르면서 경찰이 위축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 경찰처럼 우리 경찰도 불법 집회에 엄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노숙 시위 지켜만 본 경찰 - 지난 16일 오후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드러누운 채로 노숙 투쟁을 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소주와 맥주 등을 마시며 술판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당시 시위대의 불법행위를 보면서도 충돌을 우려해 적극적인 제지에 나서지 않았다. /남강호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참석했고, 정부 측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윤희근 경찰청장, 대통령실은 김대기 비서실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민노총은 지난 16~17일 1박 2일간 서울 도심인 세종대로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서울광장 등을 무단 점거했고, 야간에 인도에서 노숙하며 술판을 벌였다. 일부는 덕수궁 돌담길에 방뇨했고, 거리 흡연으로 보행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들이 머물고 간 자리엔 쓰레기가 100t가량 쌓였다. 민노총 측은 16일의 경우 오후 5시까지 경찰에 집회 허가를 받았지만, 오후 5시 이후엔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 합류하겠다며 밤샘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민노총이 불법 점거 노숙을 할 때 경찰은 이들을 통제하며 귀가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서 ‘통행로 확보’를 이유로 불침번을 서며 이들을 관리해 비판받았다. 형사·민사 책임을 질까 걱정하는 경찰 내부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불법 시위자를 현장 검거하는 과정에서 시위자의 저항으로 물리적인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숨진 백남기씨 사망 사건을 처리하면서 검찰은 서울경찰청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기도 했다. 당정은 현 정부에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형법 등을 고쳐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의 경우 민노총 건설노조에 서울광장 무단 사용 변상금 9300만원과 청계광장 무단 사용 변상금 260만원 등을 부과한 상태다. 경찰도 민노총이 야간 문화제 참석을 빙자한 꼼수 집회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민노총 건설노조위원장 등 집행부 5명에게 오는 25일까지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고, 불응 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겠다고 예고했다.

당정은 과한 소음 때문에 시민이 불편을 겪는 일 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했다고 한다. 이에 당정은 이날 회의에서 집회·시위 현장의 소음 규제, 현수막 설치 등과 관련한 규정에 대한 보완 논의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의 경우 윤재옥 원내대표가 2020년 6월 발의한 집회·시위법 개정안도 당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법안은 집회·시위 금지 시간을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구체화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옥외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회·시위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는 14년간 해당 조항을 수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는 민노총의 노숙 시위 같은 일이 일어나도 공권력이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