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발표한 지난 3월 6일 피해자 양금덕(가운데 맨앞)씨와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이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원 단체는 11년 전 피해자들과 ‘명칭을 불문하고 실제 지급받은 돈 중 20%는 모임에 교부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었고, 이를 근거로 판결금을 수령한 일부 유족에게 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근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 시민 단체가 실제 배상 판결이 나오기 한참 전에 피해자들과 ‘명칭 불문 돈 20% 지급’ 약정서를 맺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른바 ‘과거사 비즈니스’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 피해자를 치유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돈 또는 일자리가 숨은 목적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됐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시작으로 각종 과거사위 활동이 이어지면서, 이들 위원회 활동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계속돼 왔다.

◇과거사가 돈벌이 수단?

작년 1월 대법원은 과거사정리위에 소속돼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사건의 변호를 맡아 수십억원 수임료를 받은 민변 출신 변호사 2명에 대한 유죄를 확정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신분으로 취급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된 김준곤 변호사는 2008~2010년 과거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납북 귀환 어부 간첩 조작 의혹 사건’ 등을 조사했는데, 이후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 배상 소송 수십 건을 수임해 24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과거사위 활동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과거사 관련 국가를 상대로 청구된 손해배상 소송 가액은 1조2500억원에 달했다.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대리한 소송이 많다. 법무법인 덕수, 정평, 지평 등 3개 로펌이 대리해 청구한 금액이 6246억원으로 전체의 49.9%였다. 이 중 정평의 대표는 옛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였다. 민변 통일위원장이었던 심 변호사는 과거사위가 조사한 여러 사건 변론을 맡았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진상규명위에서 활동할 때는 방송에 출연해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절대로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 짓는다”며 이른바 ‘김현희 가짜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위안부 운동’도 과거사 비즈니스 의혹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었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2011~2020년 개인·법인 계좌로 모금한 1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는 검찰이 횡령한 돈 사용처를 명확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1700만원만 유죄로 인정됐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앞서 1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 등으로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안모 전 시설장(소장)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김운성씨 부부는 그간 100개 가까운 소녀상을 만들어 3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6년 특허청에 소녀상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특허청은 당시 “공익에 맞지 않는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일자리 제공 논란도

김대중 정부의 의문사진상규명위를 시작으로 각종 과거사위가 출현했는데 그때마다 현 야권(野圈)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논란이 돼 왔다. “아직 규명할 게 더 남았다”는 이유로 위원회 활동이 수차례 연장되는 게 다반사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로 확대·개편됐는데 18년 지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초대 위원장이었다.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설립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도 24년째 활동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조사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2월 출범 뒤 4년째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기본 활동 시한은 2년이었는데 1년씩 연장해 법이 규정한 최장 조사 기한인 4년을 모두 채우게 됐다. 이번 진상규명조사위까지, 1988년부터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진상 조사는 다섯 차례 이뤄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는 올해 7월까지 실시하는 유해 발굴 용역 사업에서 관련 이력이 없는 비(非)전문가 출신을 다수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용역 연구진 18명 중 11명이 유해 발굴 관련 이력이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한 시민 단체 출신 인사가 포함됐고, 이력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출신이라고 기재한 연구원도 둘이나 있었다. 기획재정부 예규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월 120만~330만원이 지급된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는 야권 인사들이 과거부터 포진해 있어 운영 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자리를 계속 나눠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