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고위직들의 이른바 ‘고용 세습’은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 기구’임을 내세워 감사 등의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관위의 조직과 권한이 실력 이상으로 비대해지면서 사실상 ‘그들만의 세상’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1963년 창설할 때만 해도 직원이 348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7시도와 249시군구에 모두 사무실을 두고 직원을 총 2961명 거느린 매머드 조직으로 변했다. 행안부와 경찰 등을 제외하고 전국 풀뿌리까지 조직을 갖춘 행정 조직은 거의 없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공관 수십 곳으로 1년씩 파견관이 나가 선거 관리까지 한다. 여기에 각종 공공 기관이나 조합·단체 대표 선거도 선관위가 관리하게 되면서, 선출직 기관치고 선관위 입김을 안 받는 곳이 없다는 평가다.
정치권조차 그동안 ‘선관위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모든 지역 정치 행사에 선관위 직원들이 참석한다. 한 재선 의원은 “선거법을 항상 의식하지만, 생각지 못한 법 위반의 경계에 서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며 “이때는 현장 선관위 직원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사실상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초선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선배들에게 처음 듣는 조언이 “선관위 직원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선관위의 선거 범죄 조사권은 사실상 검찰·경찰의 수사권보다 세다는 평가다. 범죄 혐의가 있다고 생각될 경우 선관위든 수사기관이든 사람을 데려오거나 장소를 수색하고 물건을 압수할 수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사전·사후에 관련 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선관위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 계좌를 추적해 자금 흐름을 보려고 할 때도 선관위는 금융기관의 장에게 ‘요구’만 하면 된다. 2016년 국민의당에 치명타를 안긴 리베이트 의혹도 선관위 고발에서 시작됐다. 201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선관위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선관위는 그동안 각종 논란 때마다 “헌법상 독립 기관인 만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선관위는 작년 대선에서 투표용지를 소쿠리 등에 담아 운반하는 관리 부실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감사원 감사를 거부했다. 당시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 기구인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고 이유를 들었다.
이번 고용 세습 논란도 마찬가지다. 국회 행안위 관계자는 “선관위는 워낙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내부 사정도 알기 쉽지 않다”며 “최근 자녀 채용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시도 선관위 결재로 끝났다고 했다가, 사무차장 결재까지 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했다.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 기구’라지만 사실상 사법부에 종속되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법관이 상징적 역할을 하면서 선관위 직원들은 더더욱 스크럼을 짜고 통제받지 않는 조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정치적 독립성도 의심받고 있다. 이번에 퇴임한 박찬진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거의 매년 승진해 3급에서 장관급까지 올라가는 데 약 5년이 걸렸다. 또 지난해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캠프 출신인 조해주 당시 선관위 상임위원의 3년 임기가 끝났는데도 사의를 반려해 논란이 됐다. 계속 근무하게 해 민주당에 유리한 선관위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조 상임위원은 결국 사퇴했다.
이 때문에 선관위의 권한과 업무 범위, 위원회 구성 방식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정치적 색깔을 가진 인사들이 선관위원이 되지 않도록 하고, 선관위 내부 조직도 서로 견제가 가능하게끔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선관위의 비대한 권한 축소를 위해 선거 집행 기능 등의 지방자치단체 이관도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