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발표한 사교육 대책의 핵심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 배제다. 변별력을 이유로 공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문제가 출제돼 학생과 학부모를 사교육의 늪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수능을 5개월 앞둔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자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최악의 교육 참사”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킬러 문항 배제는 지난해 대선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약이었다. 교육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축소라는 큰 틀은 여야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교육 문제만큼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 대책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에 대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이은 최악의 교육 참사라고 불릴 만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능의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안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며 “공교육 투자를 늘려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킬러 문항 배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였던 작년 1월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수능에서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초고난도 문항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2020년 9월 킬러 문항 금지법(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킬러 문항 폐지에 대해) 그때그때 달라지는 이재명 대표의 말 중에 대체 무엇이 진짜냐”고 했다. 백경훈 상근부대변인도 “민주당이 하는 킬러 문항 배제는 선(善)이고, 국민의힘 킬러 문항 배제는 악(惡)이냐”며 “윤석열 대통령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이냐. 민주당은 헷갈리면 제발 가만히 있기라도 하라”고 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재명 대표 측은 “따로 입장이 없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문제를 정쟁화하는 야당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 혼선을 준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수능 시행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문제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6월 모의 평가 때 지켜지지 않아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킬러 문항을 없애야 한다는 큰 틀은 동의한다”면서도 “국민에게 설명하는 절차가 부족했고, 내부적으로 논의가 됐다고 하더라도 수능을 앞둔 시점에 정책 변화는 엄청난 문제인데 정부가 너무 성급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전문가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런 식이면 당장 9월 모의 평가 때 누가 문제 출제를 하려 하겠느냐”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여야 모두 자성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집중하라”고도 지적했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결국 사교육을 부르는 건 수능”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수능 제도 자체를 손보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해도 특기 계발이나 선행 학습 등을 위한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공교육이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을 위한 보충 수업 등 제 역할을 못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송 교수는 “야당이야말로 사교육을 없애자는 것이 그간의 주된 기조가 아니었느냐”며 “교육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여야가 함께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