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수능 ‘킬러 문항’ 배제에 대해 “물수능은 결코 아니고, 변별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학부모님들은 안심하시라”고 했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 이후 정부가 반복해 온 말이다. 고3 아들을 둔 정민영씨는 되물었다. “그럼 킬러 대신 나온다는 준킬러 문항은 도대체 뭔가요?”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정부가 갑작스럽게 수능 변화를 예고하자 학부모와 학생들은 ‘준킬러 문항’을 알려준다는 학원을 찾고 있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하루빨리 수험생의 눈높이에서 정확하고 친절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수능에 새로운 유형이 나올지 말지가 궁금한데 정부는 ‘교과과정에서 출제한다’는 원론만 이야기하니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정부의 구체적이고 신속한 방향 제시만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에 ‘공교육 과정 외’ 문제가 출제돼 교육부 담당 국장과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이 경질됐다. 하지만 정작 어떤 문항이 문제였는지 교육부는 밝히지 않는다. 한 고교 교사는 “정부가 앞으로 나오지 않을 킬러 문항의 과거 사례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만 키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교육 참사”라며 이날까지 사흘째 맹공을 폈지만 공교육 개혁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사교육을 줄이자는 대통령의 원론적 언급을 야당이 괴담과 선동으로 왜곡한다”며 정치적 방어에만 앞장서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날도 “교육 현장이 쑥대밭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킬러 문항을 양산했다”며 수험생 불안은 뒷전이었다.
정치권이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따지는 행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까지 정쟁거리로 이용하는 것은 도를 넘었다. 수능 혼란은 신속하게 막으면서 공교육 개혁 논의는 여야가 신중하게 미래를 보고 함께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여야가 내놓은 교육, 특히 입시 관련 공약을 보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입 전형 단순화를 통해 ‘부모 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 입시 비리 척결을 위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공약했다. 이재명 대표는 공교육 국가 책임제 확대, 대입 수시 부정 엄단, 디지털 전환 교육을 약속했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킬러 문항 배제도 이 대표의 공약 중 하나였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 다양한 전문가의 해법과 의견을 들어, 이를 지면에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