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당서기에 공손히 인사하는 도종환 -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지난 17일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한 뒤 티베트 당서기 등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티베트에서 열린 중국 당국의 관제(官製) 박람회에 참석한 뒤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티베트 인권 탄압 논란에 “잘 모른다”(도종환) “70년 전 일”(민병덕)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불교계가 “보편 상식도 모르냐”며 반발했다. 불교계 표심을 의식한 민주당 방중단은 22일 “불자들께 죄송하다”고 했으나 중국의 눈치를 본 형식적 사과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는 지난 21일 ‘티베트 방문 국회의원들의 공인으로서의 답변 발언에 유감을 표한다’는 제목의 공식 입장문에서 두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티베트인들에게 사과하고 한국 불자들에게도 해명하라”고 했다. 신도 1200만명인 조계종은 한국 불교 최대 종단으로, 중앙종회는 종단 의회 역할을 하는 기구다.

조계종은 입장문에서 “티베트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는 우리나라 불자와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보편적 상식”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다거나 옛날 일로 치부하는 발언에 놀라움과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조계종은 중국이 1951년 티베트를 강제 병합하고 1959년 대규모 봉기를 진압하며 사상자 수만 명이 발생한 사실을 열거하며 “티베트의 인권 탄압 문제는 1959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계종은 지난 4월 G7 외교장관 공동성명문에 티베트 인권이 언급되고 2009년 이후 티베트 독립을 호소하며 분신(焚身)한 이가 159명이라는 통계를 언급하며 “티베트의 인권 상황이 문제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민주당의 이른바 ‘문화 교류’ 방중단(도종환·박정·김철민·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은 지난 17일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 참석했다. 방중단 여행 경비는 중국이 댔다. 서방국가는 모두 불참한 이 행사에서 도 의원은 한국 의원 대표 자격으로 축사를 했다. 그는 티베트 당서기 왕쥔정(王君正) 등에게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왕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2021년 소수 민족 인권 탄압 혐의로 제재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도 의원은 “티베트 인권 문제는 1951년, 5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한국 불교는 티베트 불교와 같은 대승(大乘) 불교에 속한다. 불교계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달라이 라마 방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티베트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달라이 라마 역시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2020년 민주당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공식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 불교 신자는 “한국의 제1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티베트 인권 탄압을 가리려는 행사에 참석한 데 대해 많은 불자가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불교계 분위기가 반영돼, 조계종 입장문 역시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 한다. 조계종은 “불교는 인간의 자유와 평화, 인권을 가장 중시하는 종교”라고 했다.

민주당 방중단은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 줄곧 ‘뭐가 문제냐’는 입장을 보여왔다. 도종환 의원은 현지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부정 여론을 만들려는 것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계종이 반발하자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이날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다. 민주당 방중단은 ‘티베트 문제에 가슴 아파하는 불자들께 죄송하다’는 제목의 사과문에서 조계종이 문제 삼은 발언에 대해 “공인으로서 적절치 못했다”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방중단은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하면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다”며 “불교계가 티베트 문제에 대해 가슴 아파하시는 것과 관련한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국회의원은 국익을 먼저 고려하며 일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방중단은 조계종이 요구한 ‘티베트인들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불교계와 정치권에선 “여전히 중국 눈치를 보며 국내용 사과문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근까지 불교계와 마찰을 빚었던 민주당에선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신속하게 사과해야 한다’ ‘불교계와 계속 대립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청래 의원이 2021년 국정감사에서 일부 사찰이 받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를 ‘봉이 김선달 통행세’에 비유하자 불교계가 거세게 반발했던 악몽을 재연해선 안 된다는 우려다.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와 송영길 대표가 대신 사과했는데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듬해 승려 5000여 명이 모여 민주당 정부의 ‘종교 편향’을 규탄하는 전국승려대회까지 열었다. 대선을 앞둔 당시 민주당은 정 의원의 탈당까지 거론할 정도로 불심 악화를 심각하게 봤다.

민주당의 ‘진보적 잣대’가 북한과 중국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근본적 문제란 지적도 많다. 민주당 강령에는 “공정·생명·포용·번영·평화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모든 생명의 가치를 중시한다” “약자를 존중한다” 같은 내용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줄곧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이 연장선에서 이번 티베트 문제에서도 중국을 편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